2024년 4월 20일 토요일

세월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인생은 만남과 이별이다. 순간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만나고 산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거울에 보이는 부스스한  내 모습을 만난다. 창문을 열면 날마다 다른 일출을 만나고, 뜰에 나가면 신선한 공기와 찬 공기를 만난다. 봄에는 여러 가지 예쁜 꽃들을 만나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녹음을 만나고, 가을에는 단풍을 만나고, 겨울에는 하얀 눈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 사랑을 전하고 기뻐하며 살다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을 남기고 사라져 간다. 길을 걸으면 사람을 만나고 숲을 걸으면 자연을 만난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자연도 하나같이 저마다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예쁜 것, 추한 것, 낡은 것, 그런 모든 것들이 한때 아름다웠을 것을 생각해 본다


봄이 오기도 전에 양지쪽에는 민들레가 땅을 헤집고 나온다. 누런 들판에는 노란 민들레가 피어 봄을 알린다. 민들레와 함께 세상의 문을 여는 엉겅퀴도 덩달아 예쁘게 차려입고 얼굴을 내민다. 민들레는 홀씨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엉겅퀴는 겨울이 오기 전까지 들판을 지킨다. 다른 식물들은 시들어 넘어지고 조그만 추위에도 얼어 죽는데 민들레와 엉겅퀴는 도도하게 추위를 견디며 마지막까지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가시가 많은 엉겅퀴 꽃은 보라색 꽃을 피운다. 가시가 많아도 가을까지 만발하는 보라색꽃은 들판을 아름답게 치장한다. 엉겅퀴는 생긴 게 억세고 사나워 보이지만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많다. 꽃과 잎과 뿌리 모두 우리 몸에 이롭다고 한다. 봄이 오면 뜰에 자라는  민들레를 뽑아 살짝 삶아 소금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조물조물 무쳐먹거나 초고추장으로 무쳐먹으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살려준다. 세상에는 많은 병을 고쳐주는 약이 많지만 자연에서 얻는 약초의 효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보는 이 없어도 혼자 피었다가 지는 하잘것없는 풀도 인연이 없으면 만나 지지 않는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며 놀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만남을 생각하면 사람과의 만남을 생각하는데 만남은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느낀다. 길을 걸으면 새들도 만나고 개들도 만난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만나고 골목을 빠져나가는 쓸쓸한 바람도 만난다. 길거리에 누워있는 낙엽도 만나고 누군가가 무심코 버린 휴지조각도 만난다. 무성하던 나무가 잎을 다 떨어뜨리고 나목이 되어 팔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서있는 나무도 만나고, 거리를 쌩쌩 지나가는 차들도 만난다. 시장에 가면 사람들을 만난다. 어깨를 스치고 가기도 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무표정으로 걷는 사람도 만난다. 잠시 스쳐가는 인연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이 참으로 많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본다. 언제 어디서 만나서 나에게 왔는지 모르지만 인연이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물건들이다. 해져서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않는 물건이 있고, 멀쩡한데 다른 곳으로 보내진 물건들이 있다. 사람도 물건도 인연으로 만나고 인연이 끝나면 어디론가 보내지고 사라진다. 어제 아침에 해가 너무나 예뻐서 사진을 찍었는데 5분도 채 안되어 구름이 가려버린 것을 보았다. 인생도 만남도 순간이라는 말이 맞다. 다음을 기약하지만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만남과 이별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오고 가는 신비한 마술 같다. 가까이 있을 때는 언젠가 만날 것 같아서 무심하게 사는데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외골수이다. '언젠가'라는 시간은 오지 않는다.


 오늘 이 순간에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지 못하는 게 많다.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말도 맞지만 세월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원하는 것도 변한다. 어제 이루고 싶던 꿈도 지나고 보면 시시하게 되고 새로운 꿈을 갖게 된다.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일도 유효기간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 어려운 것을 시도하고 힘든 것을 견디기보다 쉽고 편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좋아진다. 안 되는 것을 하기보다 되는 것을 찾게 된다. 결코 가지 않을 것 같은 세월 속에 순응하는 것을 배운다. 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어제는 오늘이 오면 가고 오늘이 가기 전에는 내일은 오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망각이라는 기관이 있어 잊고 싶지 않은 것도 잊히고, 체념 속에 뜻을 이루기도 한다. 밤이 오면 하루종일 나와 동행한 오늘과 작별을 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어 세상은 날마다 새롭다. 새날을 맞이하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인연이 다한 만남은 이별을 한다. 봄 안에 겨울이 있고 가을 안에 여름이 있어 조금은 지난날들이 어렴풋이 생각나지만 계절 따라 잊히고 계절을 따라 산다. 오늘 만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우리를 살게 하고 내일을 기다리게 한다.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어 그리움도 있고 기다림도 있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이 되어 나를 만나서 위로하고 포옹한다. 어제 지나간 모든 것들은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된다. 유효기간이 다된 것은 버려야 하듯이 세월에도 유효기간이 있어 보낼 것은 보내고 잊을 것은 잊어야 한다.(by chong sook lee)

Chong Sook 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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