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2일 수요일

유교 사회의 저주..



요즘 종종 쓰는 표현이다. 한중일 3국의 공통점은 저출산이고, 이 저출산은 복지나 육아가 좋은 지역으로 이동해서도 나아지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제일 출산율이 낮은 이민자 집단을 추적해보면 한중일 3국으로 나온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경제적 지원과 육아지원 등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한중일 3국이 그런 정책과 대책을 통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이 있고, 그것이 유교가 아닐까 한다.

유교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한적이 별로 없지만 일단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은 사람을 <대인>과 <소인>으로 구분한다는 점이다. 소인으로 분류되는 존재의 마음과 행동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유교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대부분의 행동과 사고는 적절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인과 소인을 구분하는 것 역시 신의 계시를 받은 특별한 사제나 집단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평가하고 손가락질하고 삿대질을 하는 사회가 유교사회인 것이다. "나"라는 개인의 판단과 인식에 따라 스스로를 결정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남의 시선과 판단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유교사회의 본질인 것이다.

이렇게 남의 시선과 판단을 의식하면서 눈치보도록 하는 것은 사회가 낮은 단계에 있을때는 빠르게 변화와 성취를 이루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글을 배워야 하고, 학교에 가야 하고, 일상에서 부지런하고 무엇인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20세기 들어와서 동아시아 국가의 급속한 성취와 발전을 이런 요인에 따른 것이다. 어느 사회도 이렇게 사회 전체가 광범위한 압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압력과 분위기가 영원할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지치고 만족하고 싶어하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가야한다고 끊임없이 다그친다. 정말 내가 그것을 원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는 압력은 더 높은 수준으로 사회의 평균을 밀어올린다. 교육, 주택, 여행, 소비 등 모든 면에서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판단은 사라지고 남의 시선과 기준이 나의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다.

출산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현대사회에서는 철저히 남녀간 개인의 문제이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육아와 성장에 대해 사회와 국가가 일정부분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출산과 육아에서도 경쟁과 압박, 눈치가 적용된다. 그 결과가 저출산과 0.81명의 합계출산율인 것이다.

행복이라는 감정도 왜곡되고 있다. 행복은 불행의 반대이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도 사회적 압박과 눈치를 보면서 타인의 기준에 맞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은 오르가즘과 같이 짧게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극적인 순간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느끼곤 한다. 그런 수준의 행복은 마약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직접적인 약물복용이 안된다면 그것에 준하는 것을 통해 추구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극단적인 고가 소비재의 보편화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지던 소비가 어느 시점부터는 불행하지 않아지려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근대사회의 근본인 개인을 용납하지 않고, 개인으로서 독립된 존재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유교사회의 저주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고, 저출산을 가져오고 결국은 사회의 파멸과 붕괴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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