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6일 목요일

우정의 유효기간 (엄상익)

 

10만불로 연락 끊긴 단짝친구


세상을 살면서 어설픈 인연이 많았다. 그때그때 우연히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사회활동이 끝나면 그런 인연들은 모래처럼 사라지고 어린 시절부터 키운 금 같은 귀한 우정만 남는다. 그런데 그것도 끝까지 소중히 간직하기가 쉽지 않다.

두세 살 때부터 동네에서 같이 큰 친구가 있었다. 같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동네 골목을 누볐다.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는 달랐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친했다. 한 달이면 반 정도는 우리 집에서 같이 자고 반은 내가 그 집에서 보낸 적도 있었다.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 친구는 공부 쪽 적성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가 입주 과외선생을 들여 가르쳐도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아버지를 이어서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원단 파는 상인이 됐다.

나는 이따금씩 그가 물건을 파는 가게 앞 목 의자에 앉아 그가 장사를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놀러가기도 했다. 그는 고시 공부를 하는 내가 절을 옮길 때마다 내 책과 이불 보따리를 지고 암자까지 날라 주었다.

그의 집안이 부도가 나고 그는 백수가 됐다. 나는 고시낭인이 되어 암자의 뒷방에서 빈둥거렸다. 그의 집안은 야반도주하듯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 나 역시 고시낭인생활이 싫어 군에 입대했다.

그가 걱정이었다. 야무진 여자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사람 좋고 게으른 편인 그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같이 근무하는 장교의 처제를 꼬셔서 그에게 중매했다. 그의 집안이 부도가 난 건 얘기하지 않고 예전에 부자였던 사실과 화려할 것만 같은 미국만 강조했다. 그들은 결혼했다. 그는 어느날 내게 속에 맺혔던 얘기를 내뱉었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만 공부만 할 꺼야”

그는 학교 시절 공부하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지나간 삶을 지우개로 지우고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고 십오년쯤 흘렀을 때였다. 뒤늦게 고시에 붙고 변호사를 개업한 지 일년도 안 됐을 무렵이었다.

나는 시간을 내서 뉴욕 변두리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그는 미국에서 힘들게 산 것 같았다. 길가에서 도너스 장사도 하고 막노동도 했다고 했다.


그 무렵은 세탁소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단추다는 바느질거리를 구해다 일을 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렌트비를 내지 못해 아이들과 거리로 쫓겨날지도 모르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의 아내는 중매를 한 나를 원망했다. 미안했다. 나는 사기꾼이 맞았다. 일년 쯤 후 그 친구가 갑자기 서울의 나를 찾아왔다. 반가운 김에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유년의 추억이 묻어있던 고향동네를 돌아다녔다.

골목골목에는 소년 시절의 질감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어두운 골목에 숨어 같이 몰래 담배를 배웠다. 중학 시절 광나루의 강가 모래에 텐트를 치고 거기서 소주를 마셔보면서 낄낄대기도 했었다. 그와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가 내게 십만불을 꾸어 달라고 했다. 나이 먹고 세탁소 종업원을 하기가 너무 힘겹다고 했다. 그는 내게 팔뚝에 가득 돋은 종기를 보여주면서 습기 찬 곳에서 힘에 부치는 세탁기를 만지느라고 생긴 피부병이라고 했다.

그는 변호사가 된 나를 부자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사람들의 인식은 그런 면이 있었다. 변호사는 재력을 갖춘 교양인으로 인식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사실상 나는 껍데기만 변호사였지 사건이 없어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한달 한달을 간신히 유지해 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여기저기서 돈을 꿔서 사무실을 차린 상태였다. 십만불이면 엄청난 돈이었다. 누군가에게 돈을 꿔서 그 친구에게 줄 형편도 아니었다. 그 친구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섭섭했는지 이후 그 친구의 소식이 끊겼다. 나 역시 전화를 하고 싶어도 미안하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진실을 말해도 그는 믿지 않을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는 장년의 강을 지나 노년의 산자락에 와 있다.

마음의 끈을 끊지 못한 나는 아직도 그가 걱정이 되고 보고 싶었다. 노년의 그가 어떻게 사는지 뉴욕에 사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얼마 후 부탁받은 사람이 카톡으로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재생시킨 동영상에 교회의 무대가 나타났다. 성가대의 검은 가운을 입은 그 친구가 교인들 앞에서 혼자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딸이 음대를 나와 유명한 바이얼린 연주자가 됐다는 소식이었다. 명문대를 나온 공부를 잘하는 아들을 두었다는 말도 들렸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가슴이 흐뭇했다. 하늘에 계신 그분이 그를 도운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생활력 강한 그의 아내가 아이들을 잘 키웠을 것 같다. 그렇다면 사기까지 쳐서 그를 결혼시킨 나는 수백만불짜리 아내를 그에게 선사한 셈이었다. 십만불을 못줘서 잃어버린 우정이 억울했다.

그에게 연락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우정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와 즐겁게 보냈던 소년 시절을 감사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제는 각자 조용히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잠들때가 됐으니까.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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