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1일 목요일

지옥살이

 

지옥-살이, 地獄-

고통스럽고 참담한 환경 속에서 사는 생활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어떤 모임에 갔다가 몇몇 중년 부인들을 만났다. 내가 상담자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들은 내게 관심을 보였고, 그리하여 그들과 차례차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털어놓는 내용은 하나같이 심각한 인간관계 문제였다. 어떤 부인은 딸과 심각한 갈등에 놓여있고, 어떤 이는 지난 몇 달 동안 남편과 말도 나누지 않고 지냈단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동호회 회원과 마찰을 겪다가 인제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거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몇 기본적인 사항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묻는 말을 흘려듣고 자꾸 딴소리하며 샛길로 빠졌다. 혹시 내가 너무 어렵게 말했나 싶어 다시 간략하게 말했어도 상황은 더 복잡해질 따름이었다.

아무튼 나는 가까스로 윤곽을 잡으며 그들이 먼저 실수한 것 같다고 말하며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일러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내게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피력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를 않았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다 지쳐버린 나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 찝찝했던 나는 곧바로 어떤 남자분에게 아내와 소통이 잘 되느냐고 물었다. 내가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이상했는지, 그분은 왜 그러냐고 내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좀 전에 몇몇 부인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영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아내와 사는 남자들의 심정이 엉망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분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옥이지요” 하고 대꾸하는 게 아닌가.

너무도 즉각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답답하다거나 죽을 맛이라는 정도의 대답을 예상했는데, 지옥이라는 격한 발언에 그분 또한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 대꾸했으랴 싶었다.

서로 잘 통할 것 같아 동반자로 삼고자 결혼까지 한 마당인데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낭패스러울까? 함부로 물리기 어려운 결혼이란 것을 해놓고, 더구나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어 쉽게 헤어질 수도 없으니 그 낭패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인지 의무감이나 법적으로 산다고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 때 겪는 고통인 애별이고(哀別離苦)와는 반대로, 원망스럽고 미운 자를 만나야 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도 다름 아닌 가족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게 참으로 야속하다. 가장 소중하므로 가장 큰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이치에서 보면 새삼스러울 필요가 없다지만, 여하튼 불행한 일임은 틀림없다.

못 먹고 못 살 때는 의식주보다 중요한 게 없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즉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면 그 이상을 추구하게 마련이고 또 추구해야 한다. 여기에서 나는 그 이상의 것을 얼마나 잘 소통하는지에 대한 여부라고 본다. 잘 통하면 그보다 신나는 일이 없고, 잘 통하지 않으면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없다는 말이다. 특히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통하지 않으면 만병의 근원인 외로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에서 결혼을 앞두고 사람을 사귈 때, 그 어떤 것보다 대화가 잘 되는지에 관한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고 여긴다. 대화가 잘 되는 즐거움을 지니면 어지간한 고통은 참아낼 수 있는데 반하여 그렇지 않으면 많은 호혜를 누려도 사는 게 지옥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귀는 동안에는 서로 잘 통하는 것 같았는데, 막상 한 지붕 아래 살기 시작하면서는 소통이 안 된다며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를 연애 시절 때와는 달리 상대에게 맞추는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자기 편할 때로 하려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본다. 연애 시절에 잘 맞았다고 하는 것은 둔감하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잘 맞출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번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소 긴장하는 수고를 지급하더라도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게 더 나을지, 아니면 이기심에 따라 자기 편할 대로 밀어붙이며 불통하는 게 더 나은지 고심해보자는 것이다. 단연코 전자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그 어떤 것보다 통하는 즐거움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하니 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