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군산!! 어찌 이리 조용하십니까 !! 박근혜 퇴진 외치던 그 기백은 어디로 갔습니까?

 

군산서 K제조업의 슬픈 미래를 보다

[산업 도시가 무너진다] [4·끝] GM 떠난지 7년, 지금 군산은

2009년 2월 GM대우(현 한국GM) 군산 공장에서 생산한 라세티 프리미어(해외명 쉐보레 크루즈)가 전북 군산항에서 수출용 선박에 오르기 전 늘어서 있다(왼쪽). 당시 세계 금융 위기로 수출 부진을 겪던 GM대우는 수출 전략 차종으로 개발한 라세티 프리미어 2000대를 처음으로 수출하며 위기 극복을 기약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경영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GM은 2018년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수출을 앞둔 차로 가득했던 군산 공장 출고장(오른쪽)에는 이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잡초만 남아 있다. /연합뉴스·김영근 기자


2009년 2월 GM대우(현 한국GM) 군산 공장에서 생산한 라세티 프리미어(해외명 쉐보레 크루즈)가 전북 군산항에서 수출용 선박에 오르기 전 늘어서 있다(왼쪽). 당시 세계 금융 위기로 수출 부진을 겪던 GM대우는 수출 전략 차종으로 개발한 라세티 프리미어 2000대를 처음으로 수출하며 위기 극복을 기약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경영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GM은 2018년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수출을 앞둔 차로 가득했던 군산 공장 출고장(오른쪽)에는 이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잡초만 남아 있다. /연합뉴스·김영근 기자

드론을 띄워 내려다본 풍경은 처참했다. 전북 군산시 소룡동, 옛 한국GM 군산 공장 출고장. 7년 전만 해도 갓 생산된 쉐보레 크루즈와 올란도 수백~수천 대가 빽빽이 들어차던 곳이었다. 수출 선적을 기다리던 새 차 행렬은 군산 경제를 지탱하는 자부심이었다.

지난달 16일 그곳은 텅 빈 아스팔트 바닥 틈새마다 사람 키를 넘는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고 녹슨 철조망 너머 적막만이 감돌았다. 색 바랜 ‘쉐보레 군산 출고 사무소’ 간판만이 이곳이 한때 연간 27만대 자동차를 쏟아내던 군산 경제의 심장이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이 황량한 풍경은 제조업이 무너진 국가가 맞게 될 미래를 보여주는 묵시록이기도 하다.

굳게 닫힌 공장 정문엔 ‘GM’ 대신 ‘명신’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명신은 GM이 2018년 군산 공장을 폐쇄한 뒤 이듬해 공장을 인수한 자동차 부품 업체다. 당시 GM은 글로벌 판매 부진 여파로 일부 해외 공장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군산 공장도 폐쇄 대상이 됐다. 군산 공장을 ‘폐쇄 1순위’로 만든 건 노조 리스크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군산 공장은 GM 내 ‘리스크 공장’으로 분류됐다. 2012~2018년 한국GM 전체 파업 일수는 현대차·기아의 2~3배에 달했다. 잦은 파업과 GM의 해외 공장 가운데 낮은 생산성은 GM 본사의 구조조정 결정에 명분을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는 GM 군산 공장이 나간 뒤 명신을 필두로 전기차 클러스터를 조성, 중국발 위탁 생산 물량을 받아 연간 1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른바 ‘군산형 일자리’ 모델이었다. 그러나 명신은 작년 5월 완성차 사업을 중단했다. 물량을 주던 중국 업체가 파산한 영향이다. 당초 생산 목표는 35만5000대였지만, 실제 생산량은 1% 선인 4000여 대에 그쳤다. GM 시절, 본사 직원 2000여 명과 협력업체 직원 등 1만2000여 명의 생계를 책임지던 공장엔 지금은 200여 명의 명신 직원만 남아 있다.

◇대기업 떠나자 군산 경제 허리가 꺾였다… 숙련공·청년들도 탈출

2010년대 중반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로 수출길이 막혀 군산 공장의 가동률은 2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회사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노조는 적자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 근로시간 조정 등을 대부분 거부했다. 한국GM은 북미와 남미·중국 공장과 생산성 경쟁을 해야 했지만 군산 공장에서는 글로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요구가 반복됐다. 금속노조 한국GM지부는 파업을 무기로 매년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을 요구했다. 결국 GM 본사는 군산 공장을 ‘투자 부적격’ 대상에 올렸고 결과는 공장 폐쇄라는 ‘공멸’이었다.

미국 GM 본사가 군산에서 멕시코·중국 공장으로 물량을 전환한 시기는 군산 공장의 파업이 반복되던 시기와 겹친다. GM에서 해고돼 택시 기사로 일하는 이보길(51)씨는 “명찰에 ‘GM대우’가 박혀 있으면 밥도 외상으로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며 “그러나 GM 철수 이후 해고된 직원들은 강성 노조 출신이라 뽑으면 안 된다는 말까지 돌았다”고 했다.

GM이 이탈하자 군산 경제는 허리가 꺾였다. 군산시 제조업 부가가치는 GM 가동 시절인 2010년대 중반 4조4200억원에 달했지만, 철수 직후인 2019년 3조4200억원으로 1조원이 증발했다. 2023년 3조9500억원으로 다소 회복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한다. 군산 제조업의 4분의 1을 담당하던 자동차 산업의 몰락은 특히 뼈아프다. 한때 1조원을 넘기던 자동차·트레일러 제조업 부가가치는 현재 3000억~5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고철 더미가 된 놀이공원

일자리가 사라지자 도시는 급격히 활력을 잃었다. 인구 통계는 군산의 미래가 지워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8년 대비 지난해 군산의 30대 인구는 25% 급감했다. 10대 이하(-23%), 20대(-16%)의 감소세도 가파르다. 반면 50대는 3%, 60대 이상은 24% 늘며 고령화가 심화됐다. 일자리가 사라지며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과 아이들이 떠났다는 뜻이다.

성산면 금강 하구둑 인근의 ‘금강랜드’는 이 도시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 개장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2600평 규모의 놀이공원에는 지금 녹슨 놀이기구들이 무더기로 방치돼 있다. 바이킹은 붉게 녹슬었고, 입구에는 색 바랜 ‘출입 금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소유주 소병숙씨는 “한국GM이 떠난 이듬해(2019년) 인수해 키즈몰 등으로 꾸며보려 했지만 아이들이 크게 줄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터져서 그냥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 국가산단 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새만금초등학교의 올해 입학생은 단 6명. 6년 전엔 15명이었다. 올해 3월 개학 직전 재학생이 75명이었는데 그사이 학생들이 전학 가면서 지금은 67명으로 줄었다.

현재 군산에서는 타타대우 공장이 가동하고 있고, HD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도 불황에 따른 조업 중단을 끝내고 2022년 말부터 재가동했다. 하지만 한국GM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HD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의 근무 인력은 약 1200명으로 전성기(5000여 명)의 4분의 1 수준이다. 선박 블록을 제작해 울산으로 전달하는 하청 역할에 그치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2017년 군산 조선소가 가동 중단에 들어가면서 용접 숙련공 등이 모두 외지로 떠났다”며 “선박 블록을 만들지만 울산으로 보내는 물류 비용이 더 들어, 지자체의 보조금이 끊기는 내년부터는 이마저도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조업 경쟁력 하락한 한국의 미래

군산시는 최근 관광 도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이 빠져나간 뒤 청년을 붙잡아둘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군산대 화학공학과 4학년 김민기(24)씨는 “연봉 3400만원 정도 되는 일자리만 구해도 군산에 남아서 살고 싶다”고 했다.


군산의 지난 7년은 우리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을 때 펼쳐질 한국의 미래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사업이 부진한데 강성 노조가 비용 구조까지 악화시키자 글로벌 본사는 물량을 해외로 옮겼다. 대기업이 이탈하자 협력업체 생태계와 지역 경제가 차례로 무너졌고, 청년들이 떠나갔다. ‘중국’이라는 무서운 경쟁자, 기업을 옥죄는 강성 노조와 반기업 입법, 젊은 인재의 씨를 말리는 세계 최고속 고령화로 인해 사면초가인 한국 제조업의 위기가 계속될 경우 우리 사회가 겪게 될 미래가 군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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