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평안은 단순히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생의 거친 파도를 다 겪어낸 뒤에 찾아오는 **'깊은 고요'**에 가깝습니다. 죽음 또한 삶의 단절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의 완성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평안이 시작되기도 하죠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면, 사람은 비로소 질문을 바꾼다.
“얼마나 더 이룰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가?”를 묻게 된다.
젊은 날에는 죽음이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 삶을 또렷하게 비추는 배경이 된다. 끝이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오늘을 선명하게 만든다. 언젠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솔직해진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말은 무모한 낙관이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왔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살아 있고, 죽음이 온 뒤에는 느끼는 자가 없다는 것. 그러니 두려움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살아 있는 지금을 온전히 누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노년의 평안은 모든 것을 다 가졌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이 내려놓았기 때문에 찾아온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기고 싶은 마음, 끝까지 붙들고 싶었던 욕심을 하나둘 놓아버릴 때 마음은 가벼워진다.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이때 비로소 이해된다. 오래 품고 있던 원망을 내려놓는 순간, 숨이 깊어진다.
삶을 오래 살아본 사람은 안다. 완벽한 선택은 없었다는 것을. 더 잘할 수 있었던 순간도 있었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노년의 성찰은 자신을 심판하기보다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래도 나는 그때 최선을 다했구나.” 이 한마디가 마음을 따뜻하게 덮는다.
고대의 현자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앞에 두고도 담담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배움의 가능성으로 바라보았다. 그 태도는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을까.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더 정직하게 사랑하는 일이다. 언젠가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의 인사를 더 따뜻하게 건넬 수 있다. 언젠가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의 동행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노년의 평안은 거창하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음에 감사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창밖의 빛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
“나는 충분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죽음은 삶을 지우지 않는다.
우리가 남긴 친절, 사랑, 용서, 그리고 기억은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조용히 이어진다.
해가 저물어도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듯,
한 사람의 삶도 그렇게 잔잔히 남는다.
어쩌면 평안이란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삶 한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 삶을 충분히 사랑했다면, 마지막 또한 두렵기보다 고요할 것이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선사하듯, 잘 산 인생은 평온한 죽음을 선사한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년은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끝에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저녁 시간과 같습니다. 화려한 노을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곧 찾아올 밤의 고요함 속에서 오늘 하루를 성찰하는 마음이 진정한 평안의 열쇠가 아닐까요.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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