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6일 목요일

곡선으로 이루어진 하루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인생이라는 게 완벽한 직선이 아니라 삐뚤빼뚤한 곡선이 모여 만들어지는 작품이라면, 우리는 조금은 다른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삶이 일정한 순서대로 흘러간다고 믿었다.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춰 준비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계획표는 단정했고, 마음도 그만큼 또렷했다.

하지만 실제의 시간은 계획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일은 예상보다 늦게 이루어졌고, 어떤 일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아가는 선택을 하기도 했고, 멈춰 서 있는 날도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순간을 실패라고 불렀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삶은 애초에 직선이 아니었다는 쪽에 가깝다.

강이 굽이쳐 흐르듯, 사람의 시간도 방향을 바꾼다. 그 변화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일 때도 많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생각이 달라지고, 기준이 바뀌고, 시선이 넓어진다. 겉으로는 제자리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돌아온 길은 낭비가 아니었다. 멈춰 있던 시간도 공백은 아니었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고,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완벽한 직선을 그리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애초에 그런 선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방향을 바꾸며, 때로는 흔들리며 앞으로 간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곡선 위에 서 있다.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이 불규칙한 흐름 역시 삶의 한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경험하는 고통의 총량은 불변하다. 이를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한다. 젊어서 우여곡절의 어려움을 몸소 경험한 사람은 삶의 보람과 가치를 만끽하는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역으로 젊어서 별 다른 고생 없이 자랐다면 인생의 후반기에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생 전반에 걸쳐서 한 사람이 경험하는 고통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길을 건널 때 육교를 선택하면 처음 올라갈 때에는 힘들지만 나중에 내려갈 때는 어렵지 않다. 만약 지하도를 선택해서 길을 건너기로 결정했다면 처음에는 내리막이라 쉽고 나중에는 오르막이라 어렵다. 결국 길을 건너는데 필요한 고통의 총량은 동일하다. 물론 육교와 지하도를 선택하지 않고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무단횡단을 감행할 수 있다. 운 좋게 별다른 어려움 없이 무단 횡단으로 길을 건널 수 있다. 하지만 운 나쁘게 무단 횡단한 죄과를 나중에 치를 수도 있고, 쉽게 길을 건너려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영원히 인생을 어렵게 살 수도 있다. 쉽게 가려다 평생을 어렵게 살 수도 있다. 육교와 지하도를 통해 길을 건너는 방법은 살면서 만나는 위기를 극복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인생에는 무한정 올라가는 상승곡선만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생은 한 없이 내려가는 하강곡선도 아니다. 올라가면 내려와야 되고, 내려가면 올라갈 때가 반드시 온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것이다. 지금 내려가고 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 것이며, 지금 올라가고 있다고 해서 마냥 즐거워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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