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2일 토요일

내가 조금 작아지면 누군가가 커진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을 떠올려본다. 대화 중에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면, 자연히 다른 사람은 말을 줄이게 된다. 방 안의 공기는 한정되어 있어서, 한 사람이 크게 숨을 쉬면 다른 사람은 작게 쉴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늘어나면, 누군가의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반대로 내가 스스로 물러서면, 그 빈자리에 누군가 들어와 앉을 수 있다.

이것은 손해를 보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현실적인 계산이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회의에서 내 의견을 관철시키고, 대화에서 마지막 말을 내가 가져야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매번 이기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면 가끔 져주고, 가끔 양보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인다. 이것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구조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후배의 아이디어가 부족해 보여도 굳이 지적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상사가 있다. 그 상사는 자신의 유능함을 한 번 덜 드러낸 것뿐인데, 후배는 그 자리에서 자신감을 얻고 성장한다. 상사가 작아진 만큼 후배가 커진 것이다. 이것이 몇 년 쌓이면, 그 후배는 상사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당장 내 유능함을 증명하는 것보다, 남을 키우는 쪽이 결국 더 큰 것을 남긴다.

부부 사이도 그렇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누가 옳은지를 끝까지 가리려 들면, 둘 다 지치고 상처만 남는다. 그러나 한쪽이 먼저 말을 삼키고 물러서면, 다툼은 거기서 멈춘다. 이때 물러선 사람이 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관계를 지킨 사람이다. 부부로 수십 년을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보다, 관계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고 더 값지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이 이치는 더 분명해진다. 젊을 때는 내가 커지는 것이 곧 성공이라 여겼다.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는 것. 그러나 인생의 황혼에 이르면, 그렇게 커진 것들이 결국 무겁고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자식 앞에서 조금 작아져 줄 때, 자식이 스스로 설 자리를 찾는다. 손주 앞에서 아는 체하지 않고 물러나 앉아 있을 때, 손주는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펼친다. 내가 가르치려 들지 않고 들어주기만 해도, 상대는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커진다.

물론 이것이 자기를 없애라는 뜻은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자리도 차지하지 않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회피다. 진짜 지혜는 언제 커지고 언제 작아질지를 아는 데 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 내가 사랑하는 일 앞에서는 최선을 다해 크게 서야 한다. 그러나 남의 자리, 남의 성장, 남의 자존심이 걸린 자리에서는 굳이 내가 커질 필요가 없다. 그 자리는 양보해야 비로소 건강하게 채워진다.

결국 인생이란 내가 얼마나 커지느냐를 다투는 무대가 아니라, 언제 작아지고 언제 비워야 하는지 그 수위와 균형을 맞춰가는 정교한 균형 잡기입니다. 오늘도 내 안의 작은 욕심 하나를 슬며시 내려놓으며, 그 자리에 타인을 위한 따뜻한 공백을 만들어 봅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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