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다. 어제 굳게 먹었던 결심이 오늘 흔들리고, 어제 미워했던 사람이 오늘 다시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흔히 '변덕'이라 탓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물이 한 자리에 고이면 썩듯이, 마음도 한 곳에 멈춰 있으면 병이 든다. 그러니 마음이 흐르는 것을 굳이 붙잡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방향만은 살필 일이다.
여기서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진실 하나가 드러난다. 나는 남의 마음을, 남의 생각을 결코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식이 내 뜻대로 살아주기를 바라고, 배우자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를 바라고, 세상 사람들이 내 방식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두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소망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나름의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타인의 처지를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군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구조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상처받아 스스로 무너지는 일도 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내 몫—내 영혼을 더 나은 길로 인도하는 일이다. 인생의 굴곡은 운명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내가 내리는 선택과 태도가 만든다. 배우자가 좋은 사람이었는지 아니었는지조차,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가꾸어온 내 몫이다. 환경을 탓하고, 타고난 것을 탓하고, 곁의 사람을 탓하는 것만큼 못난 삶의 방식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이 진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늙어감에 품위가 있다면, 그것은 젊었을 때처럼 살려고 발버둥 치는 데 있지 않고, 몸과 마음이 가는 속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작은 습관, 작은 인연, 작은 즐거움을 꾸준히 지켜내는 데 있다. 노년은 화려한 완성이 아니라 조용한 유지 보수다. 그 유지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사람은 늙어가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깨달음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공허한 말장난에 그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넓은 강이 흐르고, 그 강을 건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이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채, 자신이 세운 편견과 아집의 담장 안에 머무른다. 반면 생각을 실행에 옮길 줄 아는 사람은, 그 담장을 넘어 마침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존재로 거듭난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반복해서 하는 행동 그 자체가 되어간다. 어중간한 태도로 하루하루를 보내면 어중간한 인생이 굳어지고, 사랑하는 일과 사람에게만이라도 온 마음을 다하는 습관을 들이면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이 된다.
돌이켜보면 살아온 세월 동안 배운 것은 결국 단순한 이치들이다. 남에게 온 정성을 다 쏟을 수는 없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일에는 반쪽짜리 마음을 주지 말 것. 친절과 존중과 관용은 남을 위한 미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는 실용적 기술이라는 것. 화려하게 드러난 것들은 오히려 속이 빈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하루가 어제 세상을 떠난 이가 그토록 바라던 하루라는 것.
마음은 물처럼 흐르게 두어도 좋다. 다만 그 흐름의 방향키만은 내가 쥐고, 오늘 하루도 작은 한 걸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그것이 편견의 벽을 넘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남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길이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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