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오십오 년 전, 저는 서른 살의 나이로 이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삼남삼녀의 장남이 고국을 떠난다는 것은 가볍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가슴 한쪽에는 기대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말도 낯설고, 길도 낯설고, 사람들의 표정마저 낯설었습니다. 그때는 오늘처럼 영상으로 고향의 얼굴을 볼 수도, 전화 한 통을 마음 편히 걸 수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몇 해는 이 땅에 자리를 잡는 일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실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고, 말이 서툴러 하고 싶은 말을 삼켜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약을 다루는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약은 숫자 하나, 글자 하나가 틀려도 안 되는 일이라, 말이 서툰 사람도 정확함으로는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대신 일로 보여 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땅에서 신뢰를 쌓은 방식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저는 늘 최악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일자리를 잃으면 어떻게 할까,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할까, 가족이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끼고, 모으고, 여유를 남겨 두는 습관이 몸에 뱄습니다. 지금 제가 지키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그때 배운 것입니다. 뿌리 없는 사람에게는 잃지 않는 것이 곧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민의 세월은 계획한 대로 이룬 길이 아니라, 하루하루 버텨 낸 끝에 닿은 자리였습니다. 그날그날을 견디다 보니 직장이 생기고, 가정이 자리 잡고, 자식들이 자라 제 삶을 꾸렸습니다. 이제 손주들까지 이 땅에서 대학을 마치고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서른의 제가 두려움 속에서 건넌 바다 저편에서, 이렇게 큰 가족의 나무가 자랄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시절의 저에게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잘 견뎠다. 네가 지킨 정직과 성실이 헛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와 함께 낯선 땅에서 세월을 버텨 준 아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란히 골프장을 걷는 지금의 평화로운 시간은, 그 고단한 날들이 있었기에 얻은 선물입니다.
오십오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은 이제 타향이라기보다 제 삶의 터전입니다. 고향은 마음속에 그대로 있고, 이곳은 제 손으로 일군 또 하나의 고향입니다. 두 개의 고향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감사할 것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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