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문득, 빈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그 허공을, 구름은 탓하지 않습니다. 서두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유유히 흘러가며, 빈 자리를 채울 줄 아는 여유로 하늘을 지나갑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면 좋으련만, 우리는 종종 빈자리 앞에서 조급해지고 서운해합니다. 구름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어쩌면 그 여유로움일지도 모릅니다.
강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도하게, 말없이, 그러나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릅니다. 강은 자신의 흐름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흐를 뿐이고, 그 침묵 속에 이미 모든 답이 들어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 침묵을 바라보며, 말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갈 때, 저는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봅니다. 그 짧은 스침도 인연이라면, 바람은 분명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노래하고 있을 것입니다.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이 세상에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스치는 나뭇잎 하나,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도 저마다의 뜻이 깃들어 있다면, 하물며 이승을 떠난 이들의 영혼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하늘 밖 저 너머,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도 분명 그들의 숨결이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있어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화려한 무언가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은 누군가와 함께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고, 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이승에 있고, 너는 저승에 있을 뿐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때로는 견디기 힘든 거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이승"과 "저승" — 그 차이란 결국 "이"와 "저", 글자 하나의 차이일 뿐입니다. "승"이라는 본질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같은 "승" 위에, 다만 다른 자리에 서 있는 것뿐입니다. 강의 이쪽 기슭과 저쪽 기슭이 결국 하나의 강인 것처럼, 이승과 저승도 어쩌면 하나의 큰 흐름 안에 있는 두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거추장스러운 말 하나쯤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요. "이"와 "저"라는 구별을 버리고, 그저 "승"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우리는 더 이상 "여기"와 "저기"를 구분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저 함께, 같은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경계는,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언어의 습관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구름이 빈 하늘을 채우듯, 강물이 침묵으로 흐르듯, 떠난 이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람이 되어, 구름이 되어, 강물이 되어 —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그렇게 믿을 수 있다면, 이별은 끝이 아니라 잠시 자리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와 "저"의 경계마저 사라지는 날 — 우리는 다시, 같은 "승"으로 만날 것입니다.
떠난 이들을 생각하는 일은, 그러므로 슬픔에 머무는 일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어느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며, 언젠가 우리도 그 같은 흐름 속으로 합류하리라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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