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토요일

가을을 숨 쉬며

 가을을 숨 쉬는 일은

이제 계절을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 남은 시간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이 된다.

나이가 들면 계절의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은 변화가 더 깊게 마음에 들어온다.

아침 공기의 차가움이 예전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건 감성이 예민해진 것이 아니라 삶의 속도가 충분히 느려졌기 때문이다. 빠르게 지나가던 것들이 이제는 내 앞에서 잠시 멈춰 서고, 나는 그 멈춤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여름내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습기가 걷히고, 어딘지 맑고 서늘한 기운이 방 안 가득 퍼진다. 이 계절이 오면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아, 올해도 여기까지 왔구나.

여든 다섯 해를 살아오는 동안 가을을 몇 번이나 맞았는지 헤아려 본 적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젊었을 때의 가을과 지금의 가을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가을이 오면 뭔가를 서둘러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있었다. 한 해가 저물기 전에 이루어야 할 것들, 증명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 가을은 조급함이 아니라 고마움으로 다가온다.

두 다리로 걸어서 마당에 나가 볼 수 있다는 것, 아내와 함께 골프채를 들고 필드에 나가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계절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젊을 때는 몰랐다. 건강하게 두 발로 걷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나이가 들고 보니 알겠다. 화려한 성취나 대단한 완성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조용히 잘 지켜내는 것, 그것이 노년의 진짜 몫이라는 것을.

미국 땅에서 오십 오년을 살아왔다.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그 세월 속에 담긴 가을이 몇 번이었던가 싶다. 타향에서 맞는 가을은 처음엔 쓸쓸했지만, 이제는 이 계절의 색과 냄새마저 내 것이 되었다. 사람은 그렇게 낯선 곳도 결국 자기 삶으로 만들어가는 존재인가 보다.

자식들은 다 커서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고, 손주들도 대학을 마치고 제 앞가림을 하며 산다고 하니, 이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형제들 사이에 크고 작은 서운함이야 있겠지만, 그것도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며 마음을 가볍게 내려놓는다. 모든 관계를 다 붙들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옥 같은 인연은 드물고, 대부분은 스쳐가는 인연이라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을이 좋은 이유는 아마 이 계절이 삶의 후반부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증명하는 봄이 아니라, 이미 자란 것을 거두고 음미하는 계절. 뜨겁게 몰아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결실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계절. 모닝 커피 한잔 음미하며  마시는 작은 즐거움, 아내와 나누는 실없는 농담, 그런 소소한 것들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지는 것도 이 계절 탓인지 모른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이 가을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이미 선물 같은 하루다. 어제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바로 그 하루를, 나는 지금 숨 쉬고 있다.

그러니 이 가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야겠다. 조용히, 그러나 성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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