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무엇인가를 얻으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돈을 벌고, 집을 마련하고, 자식이 잘되고, 조금 더 편안하게 살면 마음도 편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살아보니 욕망은 끝이 없었다.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가 필요했고, 이루고 나면 곧 익숙해졌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욕망과 권태의 반복’이 꼭 남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어쩌면 답은 더 많이 갖는 데 있지 않은 것 같다.
잠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그것이 시작인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다 정상에 올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만큼은 돈도, 걱정도, 사람도, 지나간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눈앞의 풍경을 바라볼 뿐이다.
그 순간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을 증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존재하고 바라본다.
아마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한 미적 경험이고, 칸트가 말한 ‘사심 없는 아름다움’에 가까울 것이다.
이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사람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더 얻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잠시 욕망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되려 하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평생 찾아 헤매던 평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조용해진 자리에서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에서의 ‘미적 상태’: 욕망의 소음을 잠시 끄는 기술
현대인의 하루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욕망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해야 할 일, 채워야 할 성취, 관리해야 할 관계, 피해야 할 위험.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하나가 생기고, 잠시 쉬면 불안이 따라붙는다. 권태는 여유가 아니라 새로운 압박의 신호가 된다.
이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점점 믿지 않게 된다. 행복은 지속되지 않고, 지속되지 않기에 의심스럽고, 의심스럽기에 피로하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제안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욕망을 잠시 멈추는 순간을 찾으라. 그 순간이 바로 미적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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