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이 가져다주는 마지막 관계의 평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편하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한두 사람이 훨씬 더 소중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기적이다. 나 역시 그렇고 상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기적인 마음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자신의 이익과 속내를 숨긴 채,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웃이나 동네 지인처럼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계는 얕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 적당함이 편안함을 준다. 서로의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길에서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인사 나누고 헤어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우리 삶을 진짜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관계'다. 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겉으로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필요할 때만 달콤하게 다가오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이 야금야금 갉아먹힌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특별히 나쁜 일이 없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기운이 쭉 빠지고 마음이 허기진다.
젊었을 때는 그런 피로함도 참고 견뎠다.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게 어른의 처세라 여겼다. 그러나 황혼의 언덕에 서서 돌아보니, 나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제는 억지로 상대의 기분을 맞추며 내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단칼에 끊어내자는 뜻은 아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이런 도움이 필요하고, 나 역시 당신에게 기꺼이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서로의 필요를 숨김없이 인정하는 관계가 훨씬 더 오래가고 깔끔하다. 필요에 의해 시작된 인연일지라도, 솔직함이 바탕이 되면 그 위에 진정한 정이 생기고 튼튼한 신뢰가 쌓인다.
결국 나에게 좋은 관계란, 매일 붙어 있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앞에서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타인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품어줄 수 있음을 이제야 깊이 깨닫는다.
돌아보면 내 삶의 긴 여정 동안 수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인생의 이 계절에 서서 보니, 내 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남아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숨기거나 애써 꾸밀 필요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참된 사람 몇 명과 온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남은 삶을 가장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며, 나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지막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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