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는 젊음의 연장도 아니고, 노년의 완결도 아니다.
그 사이의 어둑한 시간,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의 잔광처럼 조용하지만 단단한 현실이 깔려 있다
황혼의 나이
황혼의 나이. 젊음의 연장도 아니고 노년의 완결도 아닌, 빛이 다 사라지기 전의 잔광 같은 시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먼저 말을 건다. 무릎은 계단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허리는 천천히 펴 달라고 청한다. 예전에는 몸이 나를 따랐는데, 이제는 내가 몸의 걸음에 맞춘다. 오래 쓴 몸이니 그럴 만하다. 잘 써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는 소박하다. 약을 챙기고, 걷고, 끼니를 거르지 않고, 일찍 불을 끈다. 젊어서는 시시해 보였을 일과가 이제는 고맙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가 얼마나 큰 복인지 이제는 안다.
떠나는 사람이 늘었다. 부고를 받는 일이 안부를 받는 일보다 잦아졌다. 처음에는 놀랐고, 그다음에는 슬펐고, 지금은 조용히 받아들인다. 남은 사람은 떠난 이들의 기억을 맡아 두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간은 이제 앞에 놓인 들판이 아니라 뒤에 쌓인 숲이다. 그래서 하루가 아깝다. 그렇다고 큰일을 하지는 않는다.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 창밖 나무의 색이 바뀌는 것을 보고, 오래 미룬 안부 전화를 건다. 그런 작은 일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채운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래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나란히 걷는다. 낱말 하나가 혀끝에서 사라질 때는 잠깐 서늘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큰 각오보다 작은 품위다. 도움을 청할 줄 알고, 받을 줄 알고,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내 손으로 하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니 이룬 것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누구와 함께 웃었는가가 오래 남는다. 이룬 것은 세월에 바래도 함께한 시간의 온기는 바래지 않는다.
한낮의 빛은 사물의 모양을 보여주고, 잔광은 사물의 뜻을 보여준다. 나는 이제 빨리 달리지 못하지만, 멈추어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이 이 나이가 준 선물이다.
빛이 다 지기 전에, 오늘도 가만히 감사한다. 아직 걸을 수 있음에, 아직 기억할 수 있음에, 아직 사랑할 사람이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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