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죽을지 모른다? 이제는 언제까지 살지 모른다
시대가 바뀐 질문
불과 백 년 전, 평균 수명은 마흔 중반이었다. 오십 년 전에도 예순을 조금 넘기면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여든을 넘기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고, 백 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 태어나면 웬만해서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수명의 끝자락까지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흔히 하던 말, "인생 뭐 있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오늘 하루 즐기고 보자"는 말은 이제 낡은 유머가 되어버렸다.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 대신,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살게 될지 모른다면,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늘어난 시간은 축복인 동시에 숙제다
수명이 늘어난 것은 분명 인류가 받은 커다란 선물이다. 하지만 선물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그저 오래 사는 것과, 오래도록 "제대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예전 방식대로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니 닥치는 대로 살자"는 태도로 늘어난 삼사십 년을 맞이한다면, 그 시간은 알맹이 없이 그저 길기만 한 세월이 되고 말 것이다. 반대로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미리 그려보고 하루하루를 쌓아간다면, 인생 후반부는 오히려 전반부보다 더 깊고 단단한 시기가 될 수 있다.
결국은 오늘 하루를 대하는 태도
그렇다면 "제대로 잘 사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거창한 계획이나 특별한 성취가 아니어도 괜찮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할 작은 이유 하나를 품는 것, 몸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이고 마음이 원하는 만큼 배우는 것, 그리고 세월에 쫓기듯 불안해하지 않고 세월과 나란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늘어난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는 길이 아닐까 싶다.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육체의 쇠퇴는 진짜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의 힘이 아니라 노년에 맞는 제 몫의 힘으로, 배우고 나누고 자기 영역을 지켜나가는 사람은 여든이든 아흔이든 여전히 존경받는 삶의 본보기로 남는다.
100세 시대는 우리에게 묻는다.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해하던 시절은 지났으니, 이제 언제까지 살게 될지 모르는 이 긴 여정을 어떤 마음으로 걸어갈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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