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나이에 이르면, 많은 것이 저절로 정리된다. 붙잡을 수 있는 시간도, 쓸 수 있는 기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려준다. 그래서 이 나이에는 모든 일에 힘을 쏟겠다는 욕심 자체가 무리다. 오히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에 마음을 쓰고 무엇은 내려놓을지를 분명히 가려내는 지혜다.
인생의 황혼에서 마주하는 일상은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성취하기 위한 무대가 아닙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오롯이 삶의 정수를 느끼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소박한 순간들에 정성을 다하는 여백으로 채워집니다.
매일 아침, 창가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밖으로 시선을 던져 계절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그 몇 분의 시간.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롯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확인하는 가장 소중한 루틴입니다.
또 하나 마음을 다해 몰입하는 순간은 바로 그린 위에 서는 날입니다. 초록빛 필드 위에서 작은 공 하나에 온 신경을 모으고, 마음의 잡념을 비워내며 한 걸음씩 걸어가는 길. 거창한 스코어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고 집중의 기쁨을 누리는 그 과정 자체입니다. 하루 5천 걸음 이상을 부지런히 걸으며 내 발로 세상을 디딛는 정직한 노동의 감각도 이 소소한 몰입에서 나옵니다.
젊은 날의 열정이 앞을 향해 달려가는 불꽃이었다면, 황혼의 진심은 조용히 주변을 온화하게 밝히는 잔불과 같습니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하루의 작은 일상들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월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자, 남은 날들을 품위 있게 살아가는 지혜일 것입니다.
결국 황혼의 나이란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가 아니라, 가진 것을 조용히 지켜내는 시기다. 그리고 그 조용한 지킴 속에서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여전히 진심을 다할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오늘 하루도 마음을 다해 살았다면, 그것으로 후회 없는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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