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7일 목요일

별거 아니었는데, 나이 들수록 어려워지는 것들

 

수술도 아니고, 큰 병도 아니다. 그저 아침에 양말을 신는 일, 낮은 의자에서 일어나는 일, 처음 보는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일. 젊을 때는 숨 쉬듯 하던 일들이 언제부턴가 하나씩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여든을 넘기고 보니, 몸이 나에게 가장 먼저 그 말을 걸어온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신발끈을 매려고 허리를 숙이는 그 짧은 순간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낄 때, 묘하게 마음이 서운해진다. 아무도 나에게 "이제 그건 못 한다"고 말한 적 없는데, 몸이 스스로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들이 있다.

미국 땅에서 산 세월이 오십오 년이다.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는 언어도, 문화도,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때는 오히려 두렵지 않았다. 젊음이라는 것이 무모함을 감당할 체력을 주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이미 익숙해진 이 나라에서조차 작은 것들이 자꾸 낯설어진다. 공항 안내 앞에서 머뭇거리고, 병원 예약 전화를 걸 때 숫자 안내음을 놓쳐 처음부터 다시 듣는다. 젊을 때는 이런 걸 새로 배우는 게 재미였는데, 이제는 배우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 되었다.

가장 어려운 건 아마 사람일 것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걸 지켜보는 일. 전화를 걸어도 이제는 받을 사람이 줄어드는 것. 예전엔 관계란 그저 곁에 있으면 자연스레 유지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관계도 붙잡고 있어야 겨우 남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이상한 건, 이런 것들이 힘들다고 해서 삶이 덜 소중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별거 아니던 순간들의 무게를 이제야 제대로 느끼게 된 것 같다. 아내와 함께 천천히 골프장을 걷는 아침, 느리게 걸어도 누가 재촉하지 않는 그 시간. 예전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감사한 일이 된다.

결국 나이 든다는 것은, 쉬웠던 것들이 어려워지는 대신 당연했던 것들이 귀해지는 교환인지도 모르겠다.



이 현실을 참고 견디는 사람이 어른인가 보다

어릴 때는 '어른'이라는 게 뭔가 대단한 자격이나 성취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어른이란 그저 견뎌내는 사람인 것 같아요. 불평해도 달라질 게 없는 것들을, 그래도 매일 아침 일어나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 그게 어른이었네요.

젊을 땐 견딘다는 말이 참 수동적으로 들렸는데, 이제 와 보니 그게 가장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도, 그 상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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