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사람 수보다 사람의 질을 생각하게 된다. 젊을 때는 명함을 얼마나 많이 주고받았는지, 경조사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성공을 증명하는 지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마당발"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칭찬이었다. 발이 마당처럼 넓다는 것, 즉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자 자산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가득 채운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자리를 채우는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이는 순수한 축하와 애도의 마음으로 왔을 것이고, 어떤 이는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 또 어떤 이는 단지 체면과 도리 때문에 왔을 것이다. 봉투 하나, 인사 한마디로 관계의 장부에 도장을 찍고 돌아가는 발걸음도 적지 않다. 그러니 그 자리가 사람으로 가득 찼다고 해서 곧 성공한 인생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오히려 그 사람이 살아온 사회적 반경의 크기를 보여줄 뿐, 관계의 깊이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진짜 질문은 다른 데 있다. 내가 사업에 실패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빠졌을 때 — 그 많던 얼굴 중 몇 명이나 실제로 손을 내밀어줄까. 돈을 빌려주고, 시간을 내어주고, 위험을 함께 짊어져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우울하고 지쳐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럼에도 옆에 앉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럴 만했다"고 공감해줄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그 숫자는 대개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리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좋은 일에는 사람이 쉽게 모인다. 축하는 비용이 들지 않고, 기쁨은 나누기 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데는 시간과 마음, 때로는 손해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힘든 순간 곁에 남는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은 인간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의 본질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넓은 인맥은 사회생활의 윤활유는 될 수 있어도,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기둥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화려한 말이나 잦은 만남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오래 연락이 없어도 다시 만나면 어제 만난 듯 편안한 사이, 내가 잘못을 저질러도 등을 돌리기 전에 먼저 이유를 물어봐 주는 사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무너졌을 때 판단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사이다. 그런 사람은 많을 필요가 없다.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인생은 이미 헛되지 않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관계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인연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억지로 붙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곁에 남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는 편이 낫다. 관계는 양이 아니라 밀도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의 성공은 장례식장을 채운 인파의 숫자가 아니라, 그 인파가 다 돌아간 뒤에도 마지막까지 내 손을 잡아줄 단 몇 사람의 존재로 가늠되는 것이 아닐까.
넓은 마당발보다, 깊은 뿌리 하나가 사람을 살게 한다.
85세의 문턱에서 보니
인생은 결국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느냐의 이야기인 것 같다.
이제는 사람을 많이 모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떠난 사람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리고 욕심내지 않고 오늘을 살아보려 한다.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는
그토록 간절했던 오늘이
지금 내 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85세의 오늘은 남은 인생의 시작이다.
내 곁에 누가 남아 있는가를 세어보는 것보다,
내가 누구의 곁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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