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망대로 되지 않음을 감사하며...
동해안 도보여행을 하던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하루 종일 걸어서 그런지 땀에 젖고 나그네의 피로가 얼굴에 가득했다. 그와 함께 해변마을에 있는 공동목욕탕으로 갔다.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얘기하던 중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즈음 건강해 보이다가 갑자기 죽는 친구들이 많아. 그게 멀쩡했던 게 아니라 칠십년이 넘게 사용한 몸의 부품들이 다 고장이 났는데 가느다란 전선 하나로 간신히 연결되어 깜박거리다가 스위치가 꺼진 게 아닐까?”
그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내 몸에 들어있는 부품들의 수명이 다해서 붉은 녹물이 흘러내리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난 일생 뭘 추구하면서 살아왔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도 자네는 칠십년대 초반 대학 시절을 청계천 빈민가로 들어가 김진홍 목사가 하는 활빈교회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야학을 했으니까 큰 일을 한 거 아닐까?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내가 도서관에 가서 고시 공부를 할 때 그는 자기를 빈민가에 던졌다. 그 친구 앞에서 나는 부끄러운 작은 그릇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큰 그릇이었다. 이기적인 인간이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
“나는 그때 진짜 빈민 운동을 하는 친구를 보조한 정도였을 뿐인데 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지만 진짜 빈민 운동을 한 그 친구는 지금까지 평생 그 일을 하고 있어.”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청빈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는 이기적인 나의 이해범위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기 때문에 청빈이라고 했다.
칠팔십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다. 요즈음 대통령선거운동이 열을 올리고 있다. 여당 대통령 후보는 노동운동가였다. 서울대학을 다니던 학생이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가 됐었다. 노동자들의 아픔을 직접 겪으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시대에 앞장섰다. 야당 대통령 후보는 소년 시절부터 공장노동자였다. 돌아가는 기계에 팔을 다치기도 했다.
그들보다 더 멋있는 사람도 있다. 정치적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진 채로 끝까지 가는 존재들이다. 노동해방을 부르짖던 시인이 쓴 책을 보면 가을 계곡의 맑은 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과거를 팔아 현재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
예전에 그가 쓴 시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시멘트 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뭉개질 것 같은 공포와 절망감이 흥건히 배어나왔다. 지상낙원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어느 날 부터인가 사상보다는 그 분에게 귀의한 것 같았다. 그분은 그를 큰 그릇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런 큰 그릇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작음과 탐욕이 부끄러웠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다.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었다. 나는 그런 속물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추구하지 않는 길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목줄이 매인 강아지같이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그분은 실패란 막대기로 나를 때리며 끌고 갔다. 그러면서 나를 가르쳤다. 피라미가 상어가 되는 꿈을 꾸지 말라고 했다. 헛것을 바라보다가 헛것이 될까봐 그런다고 했다.
그분은 내게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한 사람의 아픔이라도 만져주고 한 사람의 눈물이라도 씻어주면 된다고 했다. 큰 일을 추구하지 말라고 했다. 그분은 내게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은 허상이라고 했다. 착한 사람이 좋아하고 악한 사람이 미워하는 그런 존재가 되라고 했다.
급하게 뭔가를 성취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서둘지 말고 그렇다고 쉬지 말고 소걸음처럼 천리를 가라고 했다. 그분은 내 주제을 알고 은사의 범위 안에서 일하라고 했다. 꽃보다 꽃잎의 역할을 맡으라고 했다. 그 분은 우연히 만나는 사람의 입을 통해 성경을 통해 책을 통해 어떤 때는 사실로 다양하게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선하고 성실하고 싶었다.
“요즈음 건강해 보이다가 갑자기 죽는 친구들이 많아. 그게 멀쩡했던 게 아니라 칠십년이 넘게 사용한 몸의 부품들이 다 고장이 났는데 가느다란 전선 하나로 간신히 연결되어 깜박거리다가 스위치가 꺼진 게 아닐까?”
그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내 몸에 들어있는 부품들의 수명이 다해서 붉은 녹물이 흘러내리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난 일생 뭘 추구하면서 살아왔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도 자네는 칠십년대 초반 대학 시절을 청계천 빈민가로 들어가 김진홍 목사가 하는 활빈교회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야학을 했으니까 큰 일을 한 거 아닐까?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내가 도서관에 가서 고시 공부를 할 때 그는 자기를 빈민가에 던졌다. 그 친구 앞에서 나는 부끄러운 작은 그릇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큰 그릇이었다. 이기적인 인간이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
“나는 그때 진짜 빈민 운동을 하는 친구를 보조한 정도였을 뿐인데 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지만 진짜 빈민 운동을 한 그 친구는 지금까지 평생 그 일을 하고 있어.”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청빈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는 이기적인 나의 이해범위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기 때문에 청빈이라고 했다.
칠팔십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다. 요즈음 대통령선거운동이 열을 올리고 있다. 여당 대통령 후보는 노동운동가였다. 서울대학을 다니던 학생이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가 됐었다. 노동자들의 아픔을 직접 겪으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시대에 앞장섰다. 야당 대통령 후보는 소년 시절부터 공장노동자였다. 돌아가는 기계에 팔을 다치기도 했다.
그들보다 더 멋있는 사람도 있다. 정치적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진 채로 끝까지 가는 존재들이다. 노동해방을 부르짖던 시인이 쓴 책을 보면 가을 계곡의 맑은 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과거를 팔아 현재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
예전에 그가 쓴 시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시멘트 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뭉개질 것 같은 공포와 절망감이 흥건히 배어나왔다. 지상낙원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어느 날 부터인가 사상보다는 그 분에게 귀의한 것 같았다. 그분은 그를 큰 그릇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런 큰 그릇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작음과 탐욕이 부끄러웠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다.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었다. 나는 그런 속물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추구하지 않는 길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목줄이 매인 강아지같이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그분은 실패란 막대기로 나를 때리며 끌고 갔다. 그러면서 나를 가르쳤다. 피라미가 상어가 되는 꿈을 꾸지 말라고 했다. 헛것을 바라보다가 헛것이 될까봐 그런다고 했다.
그분은 내게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한 사람의 아픔이라도 만져주고 한 사람의 눈물이라도 씻어주면 된다고 했다. 큰 일을 추구하지 말라고 했다. 그분은 내게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은 허상이라고 했다. 착한 사람이 좋아하고 악한 사람이 미워하는 그런 존재가 되라고 했다.
급하게 뭔가를 성취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서둘지 말고 그렇다고 쉬지 말고 소걸음처럼 천리를 가라고 했다. 그분은 내 주제을 알고 은사의 범위 안에서 일하라고 했다. 꽃보다 꽃잎의 역할을 맡으라고 했다. 그 분은 우연히 만나는 사람의 입을 통해 성경을 통해 책을 통해 어떤 때는 사실로 다양하게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선하고 성실하고 싶었다.
천직으로 받은 일인 변호를 하고 내가 보았던 제비꽃 같은 작은 얘기들을 글로 만들어 왔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까 내가 추구했던 것들은 하나도 된 게 없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것들만 됐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은혜였던 것 같다. 만약 모든것이 내 욕망대로 됐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떨까. 그분을 알지 못하고 감사도 모를 것 같다. 오늘 내가 내뱉은 이 글에 대해 걱정이 피어오른다. 그 분에게 묻는다.
‘내 말이 위선이 아닙니까? 내려다보고 계시잖아요?’
그분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 엄삼익의 마음길따라 세월따라 에서
‘내 말이 위선이 아닙니까? 내려다보고 계시잖아요?’
그분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 엄삼익의 마음길따라 세월따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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