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2일 토요일

56세 창업·87세 은퇴…'삼성도 안 부럽다' 반도체따거

 

"부동의 파운드리 1위 TSMC…삼성을 '추격자'로 만든 힘"

TSMC를 전 세계 1등 파운드리 회사로 키워낸 것은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리스 창 창업주 겸 전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미래를 내다본 혜안으로 세계 최초 파운드리 기업을 세운 것은 신의 한 수 였다. 창 전 회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 바로 복귀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탁월한 경영 감각을 보였다.

반도체 외길 인생…대만의 강점·약점 제대로 파악해 TSMC 창업
창 전 회장이 회사를 설립한 것은 1987년. 그가 56세 때로 미국 굴지의 대기업에서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은퇴 후 느긋한 삶을 택할 수도 있었다. 부인도 창 전 회장의 창업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그때가 그의 인생 최대 도약기였다.

창 전 회장은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폭격을 피해 광저우와 홍콩으로 거처를 옮겼고 결국 미국으로 이주했다. 1949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공학도의 꿈을 품은 그는 MIT로 학교를 옮겨 기계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명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하며 부사장 자리까지 오를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TI는 그가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전기공학박사학위를 받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창 전 회장은 TI에서는 물론, 이후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이적한 제너럴인스트루먼트(GI)에서 연구개발(R&D)를 본격 육성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대만 정부다.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을 맡아 줄 수 없겠냐는 제안을 받고 창 전 회장은 1985년 모두의 만류를 뒤로 한 채 대만으로 떠났다. 이 대만행이 결국 TSMC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대만 정부는 반도체 회사를 육성할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창 전 회장은 오랜 기간의 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순수 파운드리' 사업이라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놨다.

소규모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들은 IBM이나 TI, 도시바 등 대기업에 제작을 의뢰했는데 이때 디자인 이전을 강요 당하는 등 힘든 거래의 연속이었다. 또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 비해 반도체 디자인이나 마케팅이 약했던 대만이었기에 종합 반도체 사업으로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은 승산이 없었다.

TSMC는 1987년 2월 자본금 2억2000만달러(2710억4000만원)로 설립됐는데 정부가 절반, 외국 투자자가 절반의 자금을 댔다. TSMC는 1990년대 민영화가 됐지만 대만 정부는 국가개발기금 등을 통해 지금도 지분 6%를 보유중이다.

창 전 회장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브로드컴, 마벨, 엔비디아 등이 안심하고 TSMC에 주문 제작을 의뢰해 왔고 이들은 오랜 기간 윈윈 관계를 유지하며 TSMC와 함께 컸다.

지난해 기준 TSMC는 499개 고객사로부터 1만761개의 서로 다른 제품을 생산했다고 밝혔다. 그 중에는 애플, 퀄컴 등 대기업도 있다. 지난해 TSMC 매출액은 1조699억8545만대만달러(43조8052억원)이다.

엔디비아 젠슨 황 CEO는 2018년 창 전 회장이 87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 "한 시대가 끝났다"며 "그는 내가 아는 세계 최고의 CEO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했다.

창 전 회장 스스로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TSMC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었단 점"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TSMC가 IC(집적회로) 산업에 진입장벽을 낮춘 덕에 수 많은 팹리스 업체들이 생겨났다"고 강조했다.


정부출자로 반도체 키워… TSMC는 ‘대만의 포스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는 ‘대만 반도체 제조 기업(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약자다. 이름에서 보듯 TSMC는 1987년 대만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진흥 프로젝트’ 일환으로 설립된 공기업이었다. 정부가 핵심 산업군을 정해 자본을 대고 초대 사장까지 직접 영입해서 만든, ‘대만의 포스코’인 셈이다.

TSMC가 지금과 같은 글로벌 공룡이 된 배경엔 파운드리라는 사업 모델을 고안한 창업자 모리스 창의 혜안도 있었지만, 일찍이 반도체 산업을 점찍어 육성한 대만 정부의 노력이 컸다. 실제로 모리스 창은 “쑨윈쉬안(孫運璿)과 리궈딩(李國鼎)이 없었으면 TSMC도 없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쑨윈쉬안은 대만 행정원장(국무총리), 리궈딩은 정무위원(장관급)을 지낸 정부 핵심 요인이다. TSMC는 1992년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대만 정부(대만행정원 국가발전기금)가 6.4%의 지분을 갖고 있다.

TSMC의 태동은 1969년부터 시작됐다. 쑨윈쉬안 당시 대만 경제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방문한 후 충격을 받고 이를 본떠 대만 공업기술연구원을 설립했는데, 이곳의 3대 원장으로 영입한 인물이 바로 모리스 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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