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화려한 꽃이라면, 늙어감은 그 꽃이 지고 난 뒤 맺히는 단단한 열매와 같습니다.
80 중반에 접어들어 바라보는 **'늙어감'**은 단순히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여정 끝에 만나는 가장 깊고 고요한 지혜의 시간입니다.
80 중반이라는 황혼의 언덕에서 돌아보는 그 시간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표현을 위로와 격려의 차원에서 말하곤 한다. 나 자신도 70대 중반까지는 때론 자신 있게 그런 표현을 수긍했었다. 그런데 80대의 고비를 넘고 보니 인생의 무상함이나 세월이 화살같이 날아가는 쾌속도라든가 또는 겨울철에 쓸쓸히 그리고 빠르게 저물어 가는 석양의 감정을 깊이 느끼곤 한다. 그리고 하나둘씩 주위를 정리하고 서운해하며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 비우기, 그래서 결국은 혼자가 되어 슬그머니 스며드는 외로움 등을 느끼기도 한다. 과거의 추억들을 하나둘씩 소환하면서 반성도 하고, 뿌듯함도 느껴보는 자아 성찰을 통해서 자신과의 대화도 걸어 본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의하면,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아침을 상징하는 어린 아기는 기어 다니고, 성인이 되면 두 발로 그리고 황혼의 시기가 되면 지팡이를 의지해야 한다. 인간은 제한된 존재이다. 육체적인 차원에서 인간은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간다. 그것을 노화라고 한다. 노화는 신체의 기능과 구조가 퇴화되어 가는 과정과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성장하다가 26세쯤부터 노화가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38세에 가장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사람의 뇌는 20대가 지나면 점점 퇴화가 진행되지만, 60세까지는 뇌의 정보처리 속도가 별 변화가 없다가 그 이후에는 노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고 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 인간의 존재와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수수께끼는 “아침에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이다.
아침은 인생의 시작 즉 유년기를 의미하며, 이때 아기는 네발로 기어 다닌다. 점심은 성인기를 뜻하며 인생의 황금기로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기다. 이때는 두 발로 걷는다. 저녁은 노년기로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므로 세 발로 걷는 것처럼 보인다.
네 발, 두 발, 세 발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미성숙에서 성숙 그리고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인생의 순환을 의미한다. 즉 인간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우주인 것이다.
이 수수께끼에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한 인생의 순환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자신에 대한 통찰을 요구한다.**
내 나이 어느새 80 중반 그동안 삶과 스쳐간 인연들.. 아무도 모르는 인간사입니다
80 중반이라는 깊은 산맥에 올라와 뒤를 돌아보니, 아팠던 사람도 고마웠던 사람도 결국은 내 인생이라는 커다란 모자이크를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조각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10대에는 세월이 시속 10km로, 30대에는 30km로, 50대에는 50km 등으로 내 달린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느낌이고, 일 년은 눈 깜작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 같다. 눈의 깜박거림에서 유래된 ‘순간’이란 말, 즉 ‘찰나’의 개념을 처음으로 설명한 사람은 철학자 플라톤이다. 그는 순간을 ‘운동이나 정지로 변화하는 시점’ 또는 운동과 정지 사이의 기묘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순간이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지금’이라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시간은 상대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나가 버린 시간은 다시는 돌아 오지 않는다. 그러니 매 순간은 귀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그 주어진 시간은 나에게 특별하게 찾아오는 보너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거스틴 (라틴어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개념도 괄목할 만하다. 그의 시간개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과거는 더이상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지나가 버린(Already) 시간으로서 현재에 살아 있는 나에게는 추억으로만 소환할 수 있다. 한편, 미래는 아직(Not yet)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단지 미래의 시간은 내가 끌어당겨서 현재에 상상으로 혹은 비전으로서 볼 수는 있다. 현재(Now)라는 시간만이 나의 현존에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의 시간은 매순간마다 나와 함께 존재한다. 지금의 현재 시간은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연속적으로 찾아오는 현재라는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과제에 직면한다. 3년을 살든, 5년을 살든, 10년을 살든, 끊임없이 공짜로 은혜로 찾아오는 그 현재의 시간을 우리는 보람있게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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