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맛"은 문자 그대로의 맛이라기보다는 신앙생활에서 얻는 기쁨, 은혜, 만족감 등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많이 사용됩니다.
주로 성경의 시편 34:8 말씀인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이나 '예수님을 믿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누리는 것을 '맛본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믿는 맛'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선하심의 경험: 하나님(예수님)의 사랑, 은혜, 축복 등을 실제로 체험하는 기쁨.
신앙의 즐거움: 의무감이나 지식으로서가 아닌, 자발적이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만족감.
자기희생의 결과: 자신의 옛된 모습을 버리고(자기를 죽이고) 주님을 따르는 희생을 통해 얻는 영적인 깊은 기쁨과 은혜.
즉,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충만함과 행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맛>
어느 포도 장수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포도 한 개를 먹고 나서
맛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에게
포도 한 송이를 상으로 주겠소".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달콤한 맛이요."
다른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새콤한 맛이요."
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요."
그러나 포도 장수는
모두가 정답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때 다른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흠! 포도맛이군!"
그제서야 포도 장수는 마지막 그 사람에게
포도 한 송이를 주었다고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처음부터 좋은 나무는 아니었습니다.
모나고 결집이 많은 나무이지만
세례와 함께 좋은 영양분인
예수님의 몸과 말씀을 먹고
실천함으로써 앞으로 좋은 나무가 되고
그 결과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인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질투의 눈과 비난의 소리가 아닌
힘찬 박수와 더불어
비틀거리지만 일어서려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소리가 아닌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또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부족하고 모가 난 제자들을
예수님은 데리고 가르치시면서
사랑과 포용을 가지고
말씀과 행동의 영양분을 늘 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귀하게 여기면서
사랑을 주실 때나, 용서를 주실 때나,
기다림이 필요할 때나...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좋은 나무 또한
금방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온갖 비와 바람 기후 속에서도
뿌리로부터
좋은 영양분을 매일 빨아들이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예수님으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기를 거부하거나
중단하신 분이 있다면
이제 시작하도록 노력합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시작하시면
반은 좋은 영양분을
이미 섭취하신 겁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슨 맛이 나야 가장 좋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로는
"예수님 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박성태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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