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3일 일요일

존경(尊敬)을 가르치다(교권이 무너진 안타까운 한국 현실을 보면서 ..)

"尊敬)



어느 초등학생(初等學生) 소녀(少女)가 학교(學校)에 가자마자 담임(擔任) 선생(先生)님에게, 길에서 주워온 야생화(野生花)를 내밀며 이 꽃 이름이 무엇인지 질문(質問)했습니다.

선생님은 꽃을 한참 보시더니 말했습니다.

"미안(未安)해서 어떡하지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 내일(來日) 알아보고 알려줄게."

선생님의 말에 소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세상(世上)에 모르는게 없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 학교(學校) 가는 길에 주운 꽃인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우리 학교 담임선생님도 모른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런데 소녀는 오늘 두 번이나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믿었던 아빠도 꽃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녀의 아빠는 식물학(植物學)을 전공(專攻)으로 대학(大學)에서 강의(講義)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소녀를 담임선생님이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질문한 꽃에 대해 자세(仔細)히 설명(說明)해 주셨습니다.

소녀는 아빠도 모르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알려준 선생님이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感歎)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事實)은 어젯밤 소녀의 아빠가 선생님에게 전화(電話)하여 그 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빠는 그 꽃이 무엇인지 당연(當然)히 알고 있었지만 딸이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실망(失望)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학교 교육(敎育)과 가정(家庭) 교육은 백(百)년(年)의 약속(約束)입니다.

백 년의 미래(未來)를 위해 백 년의 시간(時間)을 준비(準備)하는 길고 긴 과정(過程)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잘 연계(連繫)되고 조화(調和)를 이루어 가정에서는 스승을 존경하도록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공경(恭敬)하도록 가르치면 이상적(理想的)인 인성교육(人性敎育)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맹인(盲人)이 스승에게 밤늦도록 가르침을 받다가 집을 나서자 스승은 맹인에게 등불을 들려주면서 조심해서 가라고 당부(當付)했습니다.

맹인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맹인에게 등불이 무슨 소용(所用)이 있느냐고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자네는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네가 든 등불을 보고 피해 갈 것이 아닌가? " 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맹인은 스승의 깊은 마음에 감복(感服)하면서 등불을 들고 자기 집으로 향했습니다.

한참 길을 가다가 맹인은 어떤 사람과 심하게 충돌(衝突)하였습니다.

맹인의 손에는 등은 들려 있었지만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관계(關係) 안에서 존재(存在)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부모(父母)와 자녀(子女)의 관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 형제자매(兄弟姉妹)와의 관계, 이웃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람직한 인간관계(人間關係)를 유지(維持)하지 못할 때 우리는 소외(疎外)를 맛보고 외로움을 느끼며 때로는 불화(不和)를 일으키고 불행(不幸)을 자초(自招)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스승은 타인(他人)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자신(自身)을 지키는 지혜(智慧)의 등불을 맹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그 등불을 보존(保存)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충돌(衝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맹인과 충돌한 사람은 비록 눈은 뜨고 있었지만 무질서(無秩序)한 인관 관계 속에서 등불을 마련하는 여유(餘裕)와 지혜(智慧)가 모자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행복(幸福)한 인간관계 즉 바람직한 인간관계란 인격적(人格的)인 관계라야 하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인장(仙人掌)처럼 자기보호(保護)를 위한 가시를 곤두세우고 타인의 삶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사회(社會) 속에서 언제까지나 이방인(異邦人)으로 머물게 될 것이며 더군다나 서로를 감싸 안는 따스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원만(圓滿)한 인간관계,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상호존중(相互尊重)에 그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한 등불을 들고 살아감으로서 바람직한 인간관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정립(定立)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 좋은글 중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