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너무 많이 따르면 넘치고, 활은 너무 세게 잡아당기면 부러진다. 이 간단한 이치를 잊은 채 우리는 마치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인생을 정신없이 몰고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멈춰 섰을 때, 그제야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어느 깊은 밤, 적막한 외로움이 뜬금없이 찾아오면 그제야 자신의 영혼이 삭막할 정도로 메말라 있음을 깨닫는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점점 무뎌진다. 이를 막으려면 때로는 일부러 삶의 보조를 늦추고 영혼이 따라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 칼 오너리는 ‘슬로 라이프’란 게으른 것과 다르며, 단지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를 통해 삶의 진정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유럽인 탐험가가 남미로 탐험을 떠났다. 인디언 두 명을 짐꾼 겸 가이드로 고용했다. 나흘째 되던 날, 갑자기 인디언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더니 더 이상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답답해진 탐험가가 따지듯 물었다.
“대체 왜 안 가는 거요?” “기다리는 중입니다” “누굴 말이오?” “영혼이요. 여기까지 너무 빠르게 걸어오느라 우리의 영혼이 뒤처지고 말았습니다. 영혼이 우리를 따라잡을 때까지 적어도 하루는 기다려야 합니다.”
3일 동안 열심히 걷던 인디언들이 걸음을 멈춘 이유는 자신들의 영혼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보자.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회의 톱니바퀴에 끼어 온갖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돈과 명예, 지위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우리의 영혼 역시 저 멀리 뒤처진 것은 아닐까?
한 남자가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했다. 그는 회사에서 고위직 임원으로 일하면서 오랫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에게 세 개의 약봉투를 건네주었다.
“내일 아침 일찍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오전 아홉 시, 정오, 오후 3시에 맞춰 하나씩 열어보세요.” 다음 날, 그곳으로 가 아홉 시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이런 쪽지가 들어 있었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통신 기기의 전원을 끄고 조용히 귀 기울여보시오’ 남자는 따라했다. 그러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소리가 차츰 들려오기 시작했다. 파도가 밀려와 모래사장 위에 부서지는 소리, 멀리서 갈매기가 우는 소리, 시원한 바람 소리 등 듣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름다운 소리들이었다.
열두 시 정각, 두 번째 봉투를 열었다.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려보시오.’ 남자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배꼽친구들과 해가 저물 때까지 신 나게 놀던 기억이 그를 웃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산책하던 때가 떠올랐다.
오후 세시가 되어 마지막 봉투를 열었다. ‘자신이 왜 마음이 상했는지,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늘 바빴는지,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시오.’
남자는 뇌리에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상사가 회의 시간에 동료만 칭찬하고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용한 해변에 홀로 앉아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그 모든 것이 하찮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과연 상사의 칭찬 한마디나 좋은 차를 타는 것이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일일까? 남자는 문득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영혼을 충분히 돌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생의 매 순간을 투쟁하듯 살아간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그 다음 권력과 명성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수준을 높여간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그때부터는 늙는 것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낸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엘리트라는 함정에 빠져 자신의 영혼을 돌아볼 생각조차 못한 채 인생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가끔은 삶의 모든 것을 심각하지 않게, 좀 더 가볍게 대할 필요가 있다. 걸음을 늦추고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욕심의 굴레를 벗어던져라. 그런 뒤 영혼이 나 자신을 따라올 수 있도록 차분히 기다리자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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