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나서야 그것이 봄이었음을 알게 되고,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할 때야 비로소 지난여름의 찬란한 뙤약볕이 그리워집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 이른바 ‘호시절(好時節)’ 역시 늘 우리 곁을 떠나고 나서야 제 이름을 얻곤 합니다.
생의 한복판을 지날 때 우리는 대개 그 순간이 호시절임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느라 바빴고, 눈앞에 놓인 책임과 역할들을 해내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평온함은 공기처럼 당연했고, 곁에 있던 사람들의 온기는 일상의 배경처럼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체에 걸러진 기억들이 뒤로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고개를 돌려 그 풍경에 이름을 붙입니다. "아, 그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구나."
호시절이 늘 과거의 형상을 하고 찾아오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결핍'을 통해서만 '충만'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비워내고 덜어낸 뒤에 생기는 마음의 빈자리, 혹은 예전만 못한 몸의 활력이 생기고 나서야 우리는 과거의 평범했던 하루가 사실은 매 순간 기적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호시절의 이름
호시절은 늘 지나간 뒤에야 이름을 얻는다.
그때의 나는 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어딘가를 상상하면서, 눈앞의 하루를 대충 살아냈다.
그래서 몰랐다.
아무 이유 없이 웃던 날들, 별 의미 없이 길어지던 밤들이
사실은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는 걸.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그 시간에 이름을 붙인다.
호시절이라고.
하지만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건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제는 가끔 멈춰 선다.
별것 아닌 오늘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 위해서.
언젠가 또 그리워하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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