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IT(정보기술) 기업이 주 소비자였던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가 지난 10일 폐쇄됐습니다.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인 SVB가 문을 닫고 거래가 정지되면서 이 은행에 돈을 맡긴 이들은 예금자 보호가 되는 25만달러까지는 다음 주 안에 회수하고, 나머지 돈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빠졌습니다. 미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은행이 폐쇄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SVB가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알려진 지 이틀도되지 않아 미 금융당국이 전격 폐쇄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고, 파장은 얼마나 커질까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위험이 번지지는 않을까요. SVB 폐쇄의 원인과 의미를 5문답으로 풀었습니다.

◇Q1. SVB는 어떤 은행인가요.

‘실리콘밸리 은행’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SVB는 말 그대로 실리콘밸리에 많이 있는 스타트업과 IT 기업을 주 고객으로 상대하는 은행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초저금리를 발판으로 신생 IT 업계가 호황이었고 돈이 넘쳐나면서 이 은행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초저금리와 정부의 지원등으로 시장에 돈이 대거 풀리자 SVB의 예금 계좌엔 현금이 대거 유입됩니다. 2020년 1분기 말 600억달러 정도였던 SVB의 예금 잔액은 2021년 말 2000억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Q2. 예금이 많이 불어나면 은행에 좋은 일 아닌가요.

은행의 예금 계좌는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 입장에선 말 그대로 ‘예금’이지만, 은행 입장에선 언젠가는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할 ‘부채’입니다. 은행은 보통 소비자가 예금으로 맡긴 돈을 자금이 필요한 다른 소비자에게 이자를 받고 빌려줘 돈을 법니다. SVB의 경우 예금이 너무 빠르게 급증하다 보니 이 돈을 다 대출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현금을 금고에 그냥 쌓아놓을 수는 없죠. SVB는 예금 적립금으로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을 사두었습니다.

2020년 SVB가 매입한 미 국채 등 증권의 잔액은 270억달러 정도였는데, 2021년 말 이 규모가 1280억달러로 불어났습니다. 미국의 모든 은행 가운데 자산대비 증권 투자 비율(55%)이 가장 높을 정도였습니다. (같은 기간 대출은 230억달러에서 660억달러로 불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2000억달러에 육박하는예금 중에 대출은 660억달러밖에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미국 예금자보호 제도에 따르면 은행당 25만달러까지 예금자 보호가 된다. SVB 폐쇄 후 이 금액까지는 돈을 곧 돌려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언제 어떻게 얼마나 반환이 될지 불투명한 상태다. /AP 연합뉴스
미국 예금자보호 제도에 따르면 은행당 25만달러까지 예금자 보호가 된다. SVB 폐쇄 후 이 금액까지는 돈을 곧 돌려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언제 어떻게 얼마나 반환이 될지 불투명한 상태다. /AP 연합뉴스

◇Q3. 안전한 미 국채 등을 사두었다면서, 뭐가 문제인가요.

여러 문제가 동시에 겹쳤습니다. 우선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과 IT 기업들이 자금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돈이 필요할 때 가장 쉽게 돈을 구하는 방법은, 내가 은행에 맡긴 예금을 인출하는 것이겠죠. 기업들이 예금 인출을 시작하면서 SVB의 예금 잔액은 2021년 말 1890억달러에서 지난해 말 1730억달러로 줄었습니다.

예금 가입자가 맡긴 돈을 돌려주기 위해 SVB는 그동안 사둔 국채 등을 팔아야 했는데, 문제는 이 가격이 폭락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채권의 유통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금리가 폭등할 때는 채권 가격이 급락합니다. 그렇다고 예금을 안 돌려줄 수도 없고, SVB는 울며 겨자 먹기로 채권을 ‘떨이’ 수준으로 내다 팔았고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지난해 SVB가 채권 매각으로 낸 손실은 18억달러로, 한국 돈으로 약 2조3000억원에 달합니다.

◇Q4. 그렇다고 은행을 폐쇄하나요. 그동안 벌어서 쌓아둔 돈이 있을텐데요.

손실 자체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다음부터 전형적인 금융 위기의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SVB는 증권 매각이 초래한 손실로 인한 자산 감소분을 채우기 위해 지난 8일 25억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시장 상황도 워낙 안 좋은 데다 이미 SVB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진 탓입니다.

SVB가 자금 조달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질 무렵부터 예금자들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뱅크런(은행에서 앞다퉈 돈을 인출하는 일)’이 시작된 겁니다. 9일 하루동안 출금을 신청한 금액이 420억달러(약 55조6000억원)에 달했습니다. 당시 그레그 베커 SVB 최고경영자는 “우리가 여러분을 지원했던 것처럼, 이제 여러분이 우리를 지원해 주세요”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너도나도 앞다퉈 돈을 인출하면서 SVB는 더 많은 증권을 헐값에 내다 팔아야 될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런 ‘뱅크런’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예금자 보호(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정부가 일정 금액은 소비자에게 돌려주기로 약속하는 것) 제도인데, 이번엔 효과가 없었습니다. 미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입니다. 한국 5000만원에 비해 적지 않은 돈이지만 이건 개인의 경우이고, SVB를 주로 이용한 기업 입장에선 그다지 큰돈이 아닙니다. 실제로 SVB 예금 중 약 96%는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기업 입장에선 당연히 불안해져 하루라도 빨리 돈을 빼고 싶어지겠지요. 전형적인 ‘뱅크런’의 패턴입니다.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탈 CEO처럼 “미 정부가 빨리 구제금융을 해주어라”고 종용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예금 반환을 보장해준다고 하면 공포의 확산이 잦아들고, 뱅크런의 악순환이 멈출 수 있으리라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10일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은 은행 폐쇄를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리 절차는 미 예금보험공사가 맡습니다.

◇Q5. 이제 어떻게 되나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상황으로 번지는 것은 아닌가요.

SVB의 폐쇄는 분명 큰 사건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 정부가 은행을 더 탄탄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시행했던 많은 규제와 조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타트업에 특화된 은행이라는, SVB의 아주 특이한 성격이 이번 사태에 기름을 부은 측면이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은행에 쌓인 막대한 예금이 언제 빠져나갈지 모른다는 것, 은행들이 주로 사두었던 채권 가격이 지금 굉장히 많이 내려간 상태라는 점, 금융위기의 기폭제 격인 뱅크런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등은 분명 한국을 포함한 모든 금융당국이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SVB의 실패가 2008년 같은 글로벌 위기로 번지지는 않으리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당시 위기를 촉발한 부실 대출, 복잡한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한 투자, 금융회사 간 과도한 상호의존 등의 문제가 보이진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엔 없던 금리의 상승,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전쟁 같은 다른 변수가 지금은 있습니다.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인 USDC를 운영하는 미국 IT기업 '서클'은 지난 10일 폐쇄된 SVC 예금에 묶인 돈이 33억달러에 달한다고 11일 발표했다. 그러자 달러와 연동되어야 하는 USDC의 유통 가격이 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스테이블코인의 달러 교환을 일시적으로 중지했다. 사진은 2021년 4월 코인베이스 상장 당시 뉴욕 전광판 모습. /AP 연합뉴스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인 USDC를 운영하는 미국 IT기업 '서클'은 지난 10일 폐쇄된 SVC 예금에 묶인 돈이 33억달러에 달한다고 11일 발표했다. 그러자 달러와 연동되어야 하는 USDC의 유통 가격이 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스테이블코인의 달러 교환을 일시적으로 중지했다. 사진은 2021년 4월 코인베이스 상장 당시 뉴욕 전광판 모습. /AP 연합뉴스

아울러 SVB에 돈을 맡겼다가 찾지 못한 IT 기업으로 위기가 번질 위험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글로벌 최대 스테이블코인(달러에 가격이 연동되는 가상화폐) ‘USDC’ 운영사인 ‘서클’은 33억달러(약 4조4000억원)가 SVB에 묶여 있다고 11일 발표했습니다. 이후 1달러를 유지해야 하는 USDC 가격이 80센트대로 내려가는 등 가상자산으로 불안이 번질 가능성도 커지는 상황입니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USDC와 미 달러의 교환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주 SVB 사태 이후 미 금융주가 일제히 급락했는데 최악의 상황은 금융 전반의 신뢰가 무너져내리는 겁니다. 아직 그정도 상황은 아니지만, SVB 폐쇄는 은행의 최대 자산인 ‘신뢰’가 무너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뱅크런’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발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잠재적 위험이라는 현실도 드러났습니다. 국민의 돈을 맡은 은행들이 위기에 무너지지 않을 충분히 안전한 ‘댐’을 구축해두었는지, 시급히 점검해 보아야할 때라는 뜻입니다

美 SVB 신속 파산에도 연쇄 뱅크런 공포 확산

美금융당국, 청산절차 돌입
인출사태 48시간만에 조치
국민연금도 지분 300억 보유
미국 자산 규모 16위 은행이자 미국 스타트업의 산파 역할을 해온 실리콘밸리뱅크(SVB)가 대량 인출 사태(뱅크런)에 직면한 지 48시간 만에 전격 폐쇄됐다.

미 금융당국은 뱅크런이 다른 은행으로 번질 것을 염려해 속전속결로 파산을 선택했다.

11일(현지시간) 기자가 찾아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SVB 본사에는 1754억달러(약 232조원)에 달하는 예금이 일제히 동결됐다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전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SVB의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 불능을 이유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에 임명한다고 밝힌 데 따른 조치다. 미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SVB는 총자산이 2090억달러 규모에 달한다. 상업 은행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무너진 워싱턴뮤추얼은행(총자산 3070억달러)에 이어 21세기 들어 가장 큰 은행이 파산한 것이다.



SVB가 뱅크런에 직면한 지 이틀 만에 청산 절차에 돌입한 데는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반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당국의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앞서 SVB는 예금 지급을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대규모 증자에 나서겠다는 자구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뱅크런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됐다. 벤처캐피털들이 투자한 스타트업을 상대로 인출을 종용하면서 사태가 악화된 것이다. SVB 모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은 SVB를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당국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부실 은행의 연쇄 도산에 대한 공포는 커지고 있다. SVB처럼 손실이 큰 것으로 추정되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커스터머스뱅코프 등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예금 인출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국민연금공단도 SVB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작년 말 기준 10만795주를 보유 중이다. 2319만달러(약 306억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