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6일 화요일

기도

 


기도는 텔레비전의 자동 리모컨처럼 원하는 채널을 맞추면 원하는 화면을 볼 수 있게 우리가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무엇인가를 얻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이다. 기도는 욕심으로 생기는 괴로움을 이겨 내도록 도와 주며,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마저도 내맡길 수 있게 해 준다. 기도는 자연의 순리와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며 단순히 지적인 차원이 아니라 심오한 경험을 통해서 세상과 삶을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나 어떤 상황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되는 것은 오히려 바로 자신이다. 기도를 통해서 개인적이고 독선적인 사고는 전체적이고 포괄적으로 변화되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준다.

그렇게 되면, 기도를 해서 ‘건강이 좋아졌는가? 또는 병이 나았는가?’ 등의 질문에 기도가 ‘효과가 있었는가?’ 하는 효험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비에로의 열려 있음이며 이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물음이 된다. 깊은 차원에서 기도는 우리의 삶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기도를 향해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내가 지닌 오만과 남의 도움을 거부하는 자존심과 독선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삶을 통제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삶에 우리를 맡겨야 한다. 기도는 겸손을 배우고 은총을 체험하는 기회다.

신비에 열려 있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답을 정해놓고 신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고통까지도) 속에 담긴 뜻을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항변이 "이 안에서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라는 열린 질문으로 변하는 지점입니다.

질병과 노화는 인간의 유한함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효험에 집착하면 이 유한함은 극복해야 할 '실패'가 되지만, 신비에 열려 있으면 이 유한함은 오히려 무한한 신성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됩니다. 나의 약함 속에서 오히려 신의 강함과 신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삶을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벗어나 신비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준다.

기도를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고 더 큰 존재와 연결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흔히 삶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황을 통제(Control)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기도는 그 팽팽한 통제의 끈을 놓고 비로소 **'신비(Mystery)'**를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가 삶에서 갖는 의미를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 통제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상황을 장악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기도의 핵심인 **'내 뜻대로 마옵시고'**라는 태도는 내 계획보다 더 큰 흐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의 시작입니다. 이는 무력함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진정한 자유를 선사합니다.

2. '알 수 없음'의 신비로 나아가기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고난이나 경이로움을 마주할 때, 기도는 우리를 신비의 영역으로 안내합니다. 억지로 답을 내리려 하기보다, 그 모호함 속에 머물며 신성한 존재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3. 수용과 평온의 연결점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때, 역설적으로 가장 깊은 평온이 찾아옵니다. 기도는 나를 세상의 중심에서 내려놓고, 우주의 거대한 섭리 안에 나를 정렬(Alignment)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 키에르케고르

 키르케고르는 기도를 인간이 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행위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도는 불안과 절망 속에 놓인 개인이 절대자 앞에서 자기 존재를 성찰하고, 실존적 자아를 회복하려는 내적 결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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