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수록 깨닫게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돈 앞에서 냉정하다는 것을.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생활비가 부족하면 불안해지고, 아무리 큰 꿈을 가진 사람이라도 현실의 벽 앞에서는 한숨을 쉰다. 병원비를 걱정하고, 월세를 계산하며, 부모님의 노후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돈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무게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렇다고 돈이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돈이 많다고 모두가 평온한 것도 아니고, 적다고 모두가 불행한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은 선택의 폭을 넓혀 주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을 조금 늦춰 주기도 하는 현실적인 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원한다.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문제는 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돈에 끌려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돈을 위해 양심을 접고, 사람을 이용하고, 신뢰를 저버린다면 통장 잔고는 늘어날지 몰라도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간다.
돈 자체에는 양심이 없다. 누군가의 손에서는 굶주린 아이의 한 끼 식사가 되고, 누군가의 손에서는 욕심을 채우는 도구가 된다. 같은 돈이지만 누구의 마음을 거쳐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어쩌면 돈은 사람의 본모습을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어려울 때보다 여유가 생겼을 때, 그 사람이 누구를 기억하고 무엇을 위해 돈을 쓰는지에서 그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자신만을 위해 움켜쥘 수도 있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도 있다. 돈은 말이 없지만, 그 돈의 사용처는 사람의 인격을 대신 말해 준다.
우리 모두는 돈이 필요한 현실을 살아간다. 그래서 돈을 버는 일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직하게 땀 흘려 번 돈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아름다운 자부심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고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가이다.
돈은 사람을 따뜻하게도, 차갑게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몫이다.
돈에는 양심이 없다. 돈에 양심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다. 오늘도 우리가 번 돈이 누군가의 웃음이 되고, 가족의 안심이 되고,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흔적이 된다면 그 돈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삶의 온기가 될 것이다.
돈에 양심을 입히는 시간
"돈 자체에는 양심이 없다. 돈에 양심을 불어넣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젊은 날, 이국땅에서 두 아들을 품에 안고 버텨내던 시간 동안 돈은 내게 가장 날카로운 무기이자 가장 눈물겨운 방패였다. 숫자는 냉정했고, 세상은 지루하리만치 엄격했다. 행동하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담으며 철저한 숫자의 성벽을 쌓아 올렸던 것은, 오직 내게 허락된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때의 돈은 아무런 감정도, 온기도 없는 그저 차가운 데이터에 불과했다.
그러나 계절이 흐르고 삶의 저녁노을이 짙어가는 지금,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의 전반전이 숫자를 채워 넣는 '더함의 삶'이었다면, 후반전은 채워진 것들을 조용히 비워내는 '덜어냄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소임은 평생을 바쳐 모아온 그 무채색의 숫자에 어떤 숨결을 불어넣고 떠날 것인가 하는 일이다.
돈은 스스로 울지 못하지만, 쓰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 기쁨의 눈물이 되기도 하고 위로의 시가 되기도 한다. 움켜쥐고만 있으면 결국 차갑게 굳어버리는 얼음 같지만, 조심스레 녹여 흘려보내면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봄비가 된다.
내가 세상에 남길 작은 흔적들이 아내의 깊은 눈망울 속 편안한 미소로 피어날 때, 자식들의 삶에 보이지 않는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줄 때, 그리고 내 손길이 필요한 곳에 소리 없이 스며들 때, 비로소 나의 돈에도 따스한 양심이 깃들 것이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아름다운 문장을 고르듯, 나는 오늘도 내 손에 머무는 것들에 고운 온기를 입혀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눈물겨운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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