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1일 토요일

박정훈 칼럼] '호남 홀대'라는 오랜 통념

 왜 '호남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차별론'을 꺼냈다…
홀대 당했으니
보상해야 한다는
이 오랜 통념은
어디까지 진실인가

지난달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90도로 인사하고 있다.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뉴스1 쑈의 달인 이재명

2019년 ‘광주글로벌모터스’의 출발은 화려했다. 노사민정(勞使民政) 대타협으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만들었다며 찬사가 쏟아졌다. 주도한 것은 문재인 정부였다. 정권 첫해 국정 과제에 넣어 드라이브를 건 끝에 ①광주광역시 등이 출자하고 ②노동계는 저임금을 수용하며 ③현대차는 일감을 준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문 대통령이 협약식과 준공식에 연속 참석할 만큼 대단한 치적으로 내세웠다.

애초 현대차는 소극적이었으나 정부의 팔 비틀기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밀고 당기기 끝에 ‘무노조·무파업’ 합의가 이뤄졌다. ‘생산량 35만대까지 노조 없이 운영한다’는 조항이 협약문에 명시됐다. 출범 초기 노조 리스크를 제거해 주는 조건으로 현대차 유치에 성공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장 가동 2년 4개월 만에 노조가 설립됐다. 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한 노조는 지금까지 9차례 크고 작은 파업을 벌였다. 211일간 천막 농성도 했다. 작년 10월엔 광주노동청이 노동법 위반을 이유로 회사를 검찰에 송치했다. ‘저임금 무파업’의 협약문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규모는 천양지차지만 800조원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 역시 같은 구조다. 내켜 하지 않는 대기업을 정부가 압박해 투자 결정을 끌어냈다. 반도체 호황 이후를 준비하자는 국민적 공감대는 컸다. 그러나 ‘왜 호남이냐’는 질문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꺼내 든 대답은 ‘호남 보상론’이었다. 그는 “차별의 설움을 견뎌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국민적 보상”이라고 했다. 정치적 결정임을 자인한 말이었다.

‘홀대받는 호남’이라는 이 오랜 통념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호남이 정권 차원의 정치·경제적 차별에 시달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만 그것은 국가 자원을 경부(京釜) 축에 집중 투입한 군사 정권 때까지의 일이었다.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중 정부 이래 호남이 정책적 냉대를 받았다는 것은 실상과 거리가 멀다. 차별은커녕 최대 수혜자가 호남이었다. ‘균형 발전’ 예산이 우선 배정됐고 인프라 건설과 각종 국책 사업 지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전남·북의 1인당 도로·철도 연장은 전국 최상위권이다. 광주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대구·부산을, 전남은 경남·북을 압도한다(이하 광주·전남 통합 전 통계).

침체된 지방이 대개 그렇지만 호남엔 세금 낭비 현장이 유난히 많다. 텅 빈 고속도로며 ‘고추 말리는 공항’ 일화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옛 전남도청 옆엔 서울 예술의전당을 능가하는 국내 최대 ‘아시아문화전당’이 세워졌다. 국비 1조4000억원이 투입됐지만 매년 수백억 원 적자를 내는 애물단지가 됐다. 무조건 정부 예산을 따내고 보려는 경향은 어디든 마찬가지이나 호남은 유독 강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피해자 보상 심리의 작용일 것이다.

지역이 발전하려면 기업이 들어와야 한다. 모든 지자체가 기업 유치에 총력전을 펴지만 호남에선 정반대 일도 벌어졌다. 2015년 신세계가 광주에 특급 호텔과 복합 쇼핑몰을 지으려다 지역 반발로 좌초됐다. 무산시킨 주역이 민주당과 당시 문재인 대표였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도 “미국 아웃렛은 사막에 있다”며 반대했다. 통합 전 광주는 5성급 호텔도, 스타필드도, 코스트코도 없는 유일한 광역시였다.

광주는 16개 시·도 중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없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 수월성 교육에 반대한다며 자사고를 없앴다. 좋은 학교도, 쇼핑할 곳도 없는 도시에 인재가 몰려들 리 없다. 인재가 안 오면 기업도 안 온다. 문제의 본질은 ‘기업하기 좋지 않은 환경’이다. 국가 지원에서 차별받아서가 아니다.

광주에서 자란 평론가 조귀동은 ‘전라디언의 굴레’라는 호남 연구서에서 ‘지역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했다. 광주의 등록 NGO(비영리단체)는 722개에 달한다. 인구가 1.7배 많은 대구(367개)의 2배다. 광주시 예산 중 시민 단체 지원액 비중(1.85%)은 다른 시·도보다 10배쯤 많았다. 수많은 5·18 단체와 강성 노동·환경·시민 운동가들이 지역 의사 결정을 좌지우지한다.

정치는 민주당에 포획돼 있다. 수십 년간 지역 정치를 독점한 일당(一黨) 권력이 시민 운동권 세력과 손잡고 호남의 상층부를 지배하고 있다. 이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이념 카르텔’이 자생적 성장을 막고 중앙에 손 벌리는 의존 구조를 만들었다고 조귀동은 분석한다. 호남 침체는 내재적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남은 사람이 우수하고 발전 잠재력이 큰 곳이다. 그러나 전력 늘리고 물 끌어오는 것만으로 호남 반도체가 성공하진 못한다. 10년 전쯤 전북 교육감이 “삼성 반도체에 학생들을 취업시키지 말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다.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념 과잉의 땅에 반도체 기업들이 흔쾌히 가려 할 리 없다. 왜 호남이어야 하는지는 호남 스스로 증명해야 할 몫이다. ‘호남 차별론’이 ‘호남 고립론’을 부른다면 비극이다.

[사설] 온갖 참견하다 자신 주도로 말썽 난 ETF엔 '남 말'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호남행 반도체도 이자의 작품)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962년 전남 무안 출신으로, 행정고시 30회로 공직에 입문한 정통 경제 관료입니다.

국내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뒤 한국 증시가 투기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출렁이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코스피가 3% 넘게 오르거나 떨어진 날은 9일뿐이었는데, 지난 5월 27일 관련 상품이 출시된 후 30거래일 중 3% 넘게 급등락한 날이 16일로 절반을 넘었다. 파생상품이라는 꼬리가 증시 전체 몸통을 흔드는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것이다. 이 상품에 투자한 개인들의 손실도 커졌다.

이 상품 도입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월 “미국 시장에선 레버리지 상품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지만 한국에선 불가능한 것이 많다. 금융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했고 검토를 지시했다”고 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분산 투자 원칙에 따라 단일 종목 투자를 제한하던 ETF 관련 법 시행령과 규정을 고쳤고, 4개월여 만에 상품이 출시됐다. 업계에서 “전례 없는 속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증시 왜곡 논란이 한 달 넘게 이어지는 동안 침묵하던 김 실장은 처음으로 입장을 내놓았다. “처음 도입된 제도이니 보완이 필요한 경우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결정을 내려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책을 주도한 당사자로서 유감 표명이나 경위 설명은 없었다. 자신이 밀어붙인 정책으로 시장 혼란이 커졌는데도 마치 남 말하듯 뒷수습과 책임을 관련 부처에 떠넘기는 모양새다. 그동안 “반도체 초과 세수를 국민 배당금으로 활용하자”거나 “3고(高) 현상은 성공의 비용”이라며 대통령 참모답지 않게 절제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레버리지 상품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청와대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드러누워서 막았어야 했나 반성하고 후회한다”고 고개 숙인 것과도 대비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청와대 정책실장의 말 한마디에 금융당국이 충분한 검토 없이 초고위험 상품을 속전속결로 출시한 관치금융이다. 정책을 주도한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따로인 구조로는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 실장은 섣부른 정책 추진으로 빚어진 시장 혼란과 투자자 피해에 대해 직접 사과해야 한다. 결자해지의 자세로 책임지고 후속 대책까지 주도하는 것이 정책 결정자로서 최소한의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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