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산다"는 말의 민낯
'걸으면 산다'는 말, 참 근사하고 멋진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80대의 삶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면, 그 안에는 낭만적인 풍경만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치열한 싸움이 들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젊은 날의 걷기가 풍경을 즐기거나 사색을 위한 여유였다면, 지금의 걷기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치르는 나 자신과의 '기싸움'에 가깝습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규율
솔직히 어떤 날은 침대에서 일어날 때부터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며 속삭입니다. '오늘은 좀 쉬지 그래?' 80대의 몸은 정직해서, 하루만 게으름을 피워도 금세 표가 납니다. 다리가 풀리고, 걸음이 무뎌집니다.
그래서 운동화를 신는 행위는 단순한 준비가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엄격한 선언입니다. '걸으면 산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걷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냉정한 현실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목표한 걸음 수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것은, 나태해지려는 본능을 억누르는 가장 현실적인 규율입니다.
덜어내기 위한 발걸음
밖으로 나와 한 발씩 땅을 딛다 보면, 몸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의 무게도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제는 무언가를 더 성취하거나 움켜쥐기 위해 걷지 않습니다. 오히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 나이 듦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 혹은 주변을 향한 잔걱정들을 길바닥에 하나씩 내려놓기 위해 걷습니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마다 머릿속의 소음이 조금씩 휘발되고, 그 자리에 고요한 평온이 채워집니다. 걷기는 가장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가장 확실하게 마음을 청소하는 도구입니다.
살아있음의 증명
그렇게 투쟁하듯 집을 나서서 3천 보, 4천 보, 그리고 마침내 목표를 채우고 집 현당관에 들어설 때의 그 뻐근한 안도감은 해본 사람만 압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속으로 안도합니다. '오늘도 내 힘으로 해냈구나. 아직 내 다리는 굳건하구나.'
"화려한 기적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오늘도 내 두 다리로 온전히 대지를 딛고 서서, 내 삶을 내 의지대로 굴려 나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생존 신고다."
"걸으면 산다."라는 말은 단순한 건강 수칙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다. 오늘 한 걸음을 내디디면 내일도 걸을 수 있고, 내일을 걸으면 희망도 함께 이어진다. 인생의 후반전은 끝을 향해 가는 시간이 아니라, 더욱 깊고 단단한 삶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오늘도 천천히 걸어보자.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길을 만나고, 길을 걷는 사람은 삶을 이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믿는다. 걸으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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