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꼬이는 순간은 기준을 잃을 때다. 좋은 게 좋다는 말로 넘기고, 불편함을 참고, 아닌 걸 알면서도 따라간다. 처음엔 작은 양보처럼 보이지만, 그 한 번의 타협이 방향을 바꾸고 결국 삶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기준은 남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것이다.
삶의 기울기를 결정하는 ‘한 번의 타협’
살다 보면 갈등을 피하고 싶어 마음에도 없는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은 참 편리하다. 그 한마디면 당장의 어색한 공기를 모면할 수 있고,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되며, 겉보기에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정체 모를 불편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대세를 따르거나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내 목소리를 삼켜버린다. 처음에는 그저 사소한 양보요, 융통성 있는 배려처럼 보인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작은 일부터, 내 시간과 에너지를 무리하게 내어주는 일까지,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나의 영역을 양보하곤 한다.
문제는 그 ‘한 번의 타협’이 가져오는 삶의 미세한 균열이다. 배가 항구를 출발할 때 키(Rudder)의 각도를 겨우 1도만 틀어도, 오랜 시간 항해를 지속하다 보면 결국 완전히 다른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삶도 이와 같다. 중심을 잃은 채 반복된 작은 양보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방향을 바꾸어 버린다.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원치 않았던 자리, 나를 잃어버린 낯선 현실 한가운데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삶 전체가 흔들리는 비극은 거대한 파도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허용한 작은 타협의 반복에서 시작된다.
흔히 '기준'을 가진다고 하면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세상을 날카롭게 판단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준은 남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거센 바람이 불고 주변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뿌리를 잡아주는 ‘내면의 닻’에 가깝다.
나만의 단단한 기준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명확히 알고, 지켜야 할 선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지킬 뿐이다. 불편함을 참아내며 나를 깎아내는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 나를 잃지 않는 기준을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다.(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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