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이 되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젊었을 때는 하루가 길었고, 한 해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계절이 바뀌는 소리조차 짧게 느껴진다. 봄꽃이 피었다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금세 겨울 문턱이다.
예전에는 더 많이 가지려고 애썼다. 가족을 위해 일했고, 자식들을 키우느라 쉼 없이 달렸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여든다섯의 언덕에 서 보니, 오래 붙잡고 있던 것들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제는 물건도 하나씩 줄여 간다. 언젠가 쓰겠지 하고 간직했던 것들은 대부분 손이 가지 않았다. 옷장도, 책장도, 서랍도 비울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워진 자리는 허전하기보다 숨 쉴 공간이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보다 안부가, 화려한 만남보다 조용한 동행이 더 소중해졌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고, 기억이 가끔 엉뚱한 길로 새기도 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할 수 없는 일을 아쉬워하기보다, 오늘도 스스로 걸을 수 있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뉴스를 보다 보면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빠르게 변하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다. 대신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내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작은 친절을 잊지 않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하루의 온도는 조금 바꿀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더 무거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덜어낼수록 가벼워졌다. 미움도, 후회도, 욕심도 조금씩 내려놓으니 마음이 맑아졌다. 완벽하게 비울 수는 없지만, 비우려는 마음만으로도 삶은 한결 편안해진다.
여든다섯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높은 언덕 하나에 올라선 시간이다.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보이고, 앞을 바라보면 아직 걸어야 할 짧지만 소중한 길이 남아 있다. 그 길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서두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려 한다.
오늘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고, 햇살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작은 웃음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든다섯의 언덕에서 내가 배우는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다. 덜어낼 줄 아는 용기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 마음 하나만 끝까지 지킬 수 있다면, 내 삶은 가볍고도 맑게 오래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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