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이라는 긴 세월,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삼켜내야 했던 수많은 말들과 고단했던 하루하루가 먹먹하다 못해 숙연해지는 세월의 무게입니다
이민 온 지 어느덧 5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어디에 정착할지 알 수 없었다. 일이 있는 곳을 따라 움직였고, 가족의 필요에 맞춰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다. 주가 바뀔 때마다 삶의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떤 곳에서는 겨울이 길었고,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의 말투가 낯설었다. 어디서든 하루를 버티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하고, 먹고, 자고, 다시 일하는 반복 속에서 조금씩 이민자의 시간이 쌓여갔다.
그렇게 여러 주를 옮겨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정착’이라는 말이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 사는 곳이 바뀌어도 결국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마침을 맞을 것 같다. 이곳의 공기는 조용하고, 사람들의 걸음도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에 창밖을 보면 햇빛이 천천히 번지는 모습이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 정도면 마지막 자리를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화려한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후회할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냈고,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이제는 더 멀리 갈 생각도 없다. 남은 시간은 조용히, 지나온 길을 천천히 정리하며 보내고 싶다. 펜실베이니아의 이 평온함이 마지막을 준비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황혼길은 저물어 가지만 마음이 머무는 자리는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화려한 곳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조용히 쌓여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 나는 “그래도 잘 살아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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