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5일 토요일

"효도와 돌봄의 현실"에 대한 한 여성(Shifali Erasmus)의 이야기입니다

 

황혼의 나이에 다시 생각하는 효도와 삶의 균형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부모를 잘 모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노후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내 삶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시팔리 에라스무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현실입니다.

젊을 때 우리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말합니다.

“내가 나이가 들면 자식들이 나를 돌봐 주겠지.”
“내가 부모를 모셨듯이 내 아이들도 나를 생각해 주겠지.”

하지만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자녀들은 각자의 직장과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경제적 부담도 커졌습니다. 과거처럼 여러 세대가 한집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서로를 돌보던 시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못하면 불효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효도는 자식의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1. 부모도 자신의 노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황혼의 나이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식이 나를 어떻게 돌봐 줄까”가 아니라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젊을 때 자녀를 위해 집을 마련하고 교육을 시키며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하지만 노년에는 새로운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건강, 경제력, 생활 공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사랑받는 부모가 되는 것과 자녀에게 의존하는 부모가 되는 것은 다릅니다.

좋은 부모는 마지막까지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모입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가족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죄책감과 의무감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2. 자식의 사랑은 함께 사는 거리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생각합니다.

“자식이 가까이 살아야 효도다.”
“같이 살아야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물리적인 거리와 항상 비례하지 않습니다.

매일 같은 집에 살아도 마음이 멀 수 있고, 멀리 살아도 늘 걱정하고 챙기는 가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입니다.

좋은 시설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부모를 자녀가 자주 찾아보고 마음을 나누는 것도 충분히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입니다.

오히려 전문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 부모에게 더 좋은 삶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3. 자녀에게도 자신의 인생이 있습니다

황혼기에 접어든 우리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자식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계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녀 역시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직장이 있고, 배우자가 있고, 자녀가 있고, 해결해야 할 현실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원하는 것이 “나 때문에 네 인생을 포기하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부모가 마지막까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 삶을 잘 살아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겠다.”


4. 노년의 가장 큰 자산은 돈보다 관계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집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재산보다 중요한 것은 아플 때 찾아와 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노후 준비는 경제적인 준비만이 아닙니다.

건강 관리, 친구 관계, 취미, 지역 사회와의 연결, 그리고 가족과의 따뜻한 관계가 함께 준비되어야 합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5. 황혼의 지혜는 내려놓는 데 있습니다

젊을 때의 삶은 얻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은 돈, 더 큰 집, 더 높은 자리.

하지만 인생 후반부는 조금 다릅니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가 중요해집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식에게 기대려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서로에게 부담이 아닌 힘이 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한 딸이 내린 선택은 부모를 외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더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현실적인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황혼의 나이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는 부모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에게 사랑과 지혜를 남기는 부모입니다.

그리고 좋은 자식은 부모의 모든 문제를 대신 짊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가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찾아주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계절에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되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새로운 효도의 모습입니다.

Shifali Erasmus with her father, Desmond. Courtesy of Shifali Erasmus

아버지는 현재 노인 요양 시설에 계십니다. 직장에 다니는 싱글맘으로서, 저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며 부모님 두 분을 모두 돌볼 수는 없었습니다.


시팔리 에라스무스(Shifali Erasmus)는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면 자신이 직접 전업 간병인이 되어 그분들을 돌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녀는 다세대 동거가 비교적 흔한 남아시아계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싱글맘으로서 직장 생활을 유지하는 동시에 부모님을 돌보는 일까지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거주하며 홍보(PR) 대행사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46세 시팔리 에라스무스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은 분량 조절과 가독성을 위해 편집되었습니다.

저는 싱글맘으로, 부모님이 40년 동안 소유하셨던 집에서 20마일(약 32km) 떨어진 아파트에서 십 대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는 약 12명의 가족이 한 부지 내에서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의 주거 형태와는 사뭇 다른 환경입니다. 당시에는 어머니의 남자 형제와 두 자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모두 한집에서 생활했었으니까요.

세대별로 다른 책임을 맡는 이러한 방식은 인도 문화에서 꽤 흔합니다.

이미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81세의 아버지가 2026년 2월에 심하게 넘어지셔서 척추 수술을 받으셔야 했을 때, 저는 어머니와 아들들과 함께 살 수 있는 큰 집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경외과 의사였던 아버지가 2023년부터 고혈압과 당뇨병 등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기에,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롱 코비드(long COVID)'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급성 신부전까지 앓고 계셔서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재활 시설에 계셨습니다.

한편, 은퇴한 산부인과 의사이신 어머니는 82세라는 연세에 비해 비교적 건강하셨지만 고혈압을 앓고 계셨습니다. 두 분이 사시던 집은 현관까지 12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기에, 그곳에서 계속 지내시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아버지가 넘어지신 후, 위스콘신에 살던 언니가 비행기를 타고 베이 에어리어(Bay Area)로 왔습니다. 아버지가 재활 시설에 계셨던 덕분에 우리는 숨을 고르며 힘든 결정들을 내릴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아이들과 조부모님, 그리고 제가 함께 살 집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 네 분 모두를 주로 돌보는 역할을 맡았겠지요.

마치 압력솥 안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곧 함께 사는 것이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싱글맘이자 회사 임원인 제가 어떻게 그 모든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역할을 맡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리고 지속 가능성 면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월의 어느 날이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누공 합병증으로 응급실에 계셨고, 어머니 또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같은 시기에 입원하셨던 때였죠.

저는 업무용 컴퓨터를 가방에 넣은 채 부모님의 병실을 정신없이 오가야 했습니다. 휴대전화와 업무용 메신저(Slack)는 챙겼지만, 정작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상사분은 상황을 깊이 이해해 주셨습니다.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회사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마치 압력솥 안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동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부모님 곁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데려와 줄 친구에게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설령 환자를 들어 올리는 등의 신체적인 간병 업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만약 제가 그 모든 일을 혼자 다 해내려 했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졌을지를 말이죠.

Erasmus and her dad, who has entered a senior living facility.Courtesy of Shifali Erasmus

부모님이 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끝없는 악순환에 갇히고, 나는 식사 준비와 목욕, 병원 진료 동행 등을 감당하느라 허덕이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우리 가족의 생계를 지탱해 주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서는 아이들과 부모님 모두를 전담하여 돌보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와인과 치즈를 곁들인 사교 모임도 열립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바꿔 아버지께서 지내실 만한 인근 노인 주거 시설을 둘러보았습니다. 결국 집에서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작은 주방이 딸린 쾌적한 아파트 형태의 시설을 선택했습니다. 비용은 월 1만 달러이며 아버지의 저축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24시간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모든 식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투석이나 반경 10마일 이내의 원하시는 장소로 이동할 때 차량을 지원해 줍니다. 심지어 와인과 치즈를 즐기는 사교 모임 같은 행사도 열립니다.

아버지의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매달, 그리고 매주 방문하는 의사와 전문 간호사(NP)에게 아버지의 기본적인 건강 관리를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직원들이 약 복용을 관리하고 혈당 수치를 확인하며, 필요시 추가로 약을 투여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매각하셨고, 현재 어머니께서는 작은 집을 마련해 따로 지내고 계십니다. 주변에서는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합쳐서 지내실지 묻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균형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물론, 특히 대가족 생활을 해온 제 배경 때문에 죄책감을 많이 느껴요. 마치 전통을 거스르는 것 같거든요.


여성의 정체성은 그녀가 선택하는 모든 역할에 의해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어머니, 딸, 직장인, 아내, 배우자 같은 책임감이라는 꼬리표가 따라오죠.


그리고 버리고 싶지 않은 자기 자신도 있어요.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지만, 넘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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