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와 기억 사이, 지독한 역설
식탁 위에 잘 구워진 고기가 놓여 있다. 젊은 날엔 돈이 없어 마음껏 먹지 못했던 부드러운 안심이다. 이제는 고기를 살 돈도 있고 시간도 넉넉한데, 마주한 현실은 참 고약하다. 고기를 씹어 삼킬 치아가 온전치 않다. 달력에는 빈 공간이 수두룩해 시간은 차고 넘치는데, 막상 문을 열고 나가 만날 약속이 없다. 스마트폰 사진첩에는 수천 장의 사진이 담겨 있어 ‘추억’은 존재한다는데, 정작 내 머릿속의 ‘기억’은 자꾸만 흐릿해져 화면 속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것이 나이 듦이 가져다준, 현실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역설이다.
인생의 전반전은 늘 ‘더하기’의 삶이었다. 더 많은 성취, 더 넓은 평수, 더 높은 통장 잔고, 그리고 아이들이 번듯한 사회인으로 뿌리내리도록 키워내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정답인 줄 알고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해 가방을 열어보니, 정작 그것을 담아둘 주머니가 헐거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서글프고, 때로는 억울하기까지 한 허무함이 불쑥 찾아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 지독한 현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로소 깨닫게 되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
고기가 있어도 씹을 치아가 없다면, 이제는 고기 대신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음식의 깊은 맛을 음미하면 된다. 빽빽한 약속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이나 의무적인 관계에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식이 내 곁에 없다는 서운함의 이면에는, 그들이 제 몫의 삶을 당당히 살아내고 있다는 안도감이 흐른다. 비록 기억은 흐릿해질지라도,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고요한 온기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인생의 후반전은 채우는 무대가 아니라, 조용히 덜어내는 무대다. 물리적인 알맹이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현실을 억지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치아도, 약속도,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더 가볍고 단순하게 떠나기 위한 자연의 순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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