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7일 토요일

모르는 사이에서 다시 모르는 사이로

 


스마트폰 주소록을 내리다 보면 문득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분명 이름도 알고, 한때 밤을 새워가며 지독하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프로필 사진조차 바뀐 줄 모르는 이름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한때 서로의 가장 비밀스러운 페이지까지 읽어내리던 사이였으나, 지금은 길에서 마주쳐도 목례조차 어색한 타인이 되었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일 뿐이라는 말은, 그래서 서글프지만 지독하게도 사실이다.

어린 시절에는 인연이란 덧셈만 있는 줄 알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 세상은 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그 인연들은 영원히 내 곁에 단단한 성벽처럼 존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지나며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의 인간관계란 덧셈이 아니라 끊임없는 ‘순환’에 가깝다는 점이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백사장에 발자국을 남기고 가듯, 사람들도 저마다의 타이밍에 내 삶에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처음에는 그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프고 억울했다.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남으로 만들었을까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알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서로의 궤도가 달랐을 뿐이고, 각자의 세월을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진 것뿐이다.

만약 이 삶이 결국 서로를 지워가는 과정일 뿐이라면, 우리가 나눈 그 수많은 대화와 온기는 허무한 공동(空洞)에 불과한 걸까?

그렇지 않다. 비록 끝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며 살았던 그 반짝이는 세월’만큼은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상처받고, 다시 위로받았던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완성되었다. 비록 지금은 남이 되었을지라도, 내 영혼의 결 안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온기가 서려 있다.

어쩌면 인간이란 저마다 독립된 섬이고, 만남이란 그 섬과 섬 사이에 잠시 다리가 놓이는 기적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다리가 끊어지고 다시 고립된 섬으로 돌아갈지라도, 다리가 놓여 있던 시절의 풍경은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다.

오늘도 나는 거리에 가득한 ‘모르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이들 중 누군가는 미래의 내 삶을 뒤흔들 만큼 깊은 사이가 될 것이고, 또 언젠가는 다시 모르는 사이로 멀어질 것이다.

그 만남과 헤어짐의 쓸쓸한 순환을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다만, 지금 내 곁에 다리를 놓고 서 있는 이들의 손을 조금 더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을 뿐이다. 어차피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갈 세월이라면, 적어도 알아가는 그 순간만큼은 아쉬움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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