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6일 금요일

그렇구나, 하고 바라보기




 그렇구나, 하고 바라보는 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성품의 범위 안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너그럽게 행동하고, 누군가는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낸다. 어떤 이는 욕심을 앞세우고, 또 어떤 이는 끝내 양보한다. 그 모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살아온 시간과 환경, 선택이 쌓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옳고 그름만으로 재단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잘못은 잘못이고, 책임은 책임이다. 그러나 이해하려는 마음과 책임을 묻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미움이 먼저 올라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도 결국 자기 안에 있는 것만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겠구나.'

그 생각에 이르면 분노는 조금씩 힘을 잃는다. 대신 안타까움이 자리를 잡는다. 더 많이 알지 못해서, 더 넓게 보지 못해서, 결국 자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내 그릇만큼 이해하고, 내 경험만큼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바라볼 때는 '좋다', '싫다'를 서둘러 결정하기보다 '그렇구나.' 하고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판단을 멈춘 자리에 비로소 이해가 생기고, 이해가 깊어질수록 연민도 함께 자란다.

세상은 각자의 수준과 성품을 따라 흘러간다. 그 흐름을 억지로 바꿀 수는 없다. 다만 그 속에서 나만큼은 미움보다 이해를, 단죄보다 연민을 조금 더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넓어질 것이다.



인생의 시계바늘이 황혼을 가리키는 지금, 문득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참 치열하게도 살았고, 무언가를 더 채우고 거머쥐기 위해 애쓰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삶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마음 깊이 남는 울림이 있습니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좋고 싫음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젊은 날에는 왜 그리 눈에 거슬리는 것도 많고, 내 기준에 맞춰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세상 일과 타인의 삶에 굳이 내 감정의 무게를 보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두듯, 세상사도 그저 한 걸음 물러서서 구경하듯 바라보는 것이 가장 편안한 길임을 깨닫습니다.

“그렇구나”라는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참 많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려 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있고, 내 남은 삶을 복잡한 집착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겸손한 비움이 있습니다. 좋고 싫음의 분별을 내려놓고 가만히 응시할 때, 비로소 마음에는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맑고 단단한 여백이 생겨납니다.

이제 내 삶의 반경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가벼운 걸음으로 땅을 딛는 규칙적인 일상, 푸른 잔디 위에서 마음을 비우고 휘두르는 스윙, 그리고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오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소중한 인연과의 담소. 내게 정말 진실한 몇 가지만 남겨둔 이 단출한 삶이 참 고맙고 아늑합니다.

황혼기에 접어들어 마주하는 세상은 참 담백합니다. 채우려 버둥거리지 않고, 다가오는 인연과 풍경을 향해 그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 집착을 내려놓고 가벼워진 그 자리에 비로소 참된 평온이 깃듭니다. 오늘도 나는 그 고요한 여백 속에서, 내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히 거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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