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9일 월요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승패가 없는 자리



 거울 앞에 서면 서글프게도 낯선 노신사 한 명이 나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몸은 세월의 무게에 갇혀 예전 같지 않은데, 마음은 여전히 서른 살, 마흔 살의 혈기 가득했던 그 시절 어디쯤을 서성이고는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머리로는 사람 관계에 이기고 지는 것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막상 현실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마음의 저울질을 시작합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산 아내와의 사소한 말다툼에서조차 "내 말이 맞다"는 것을 기어이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고,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상대의 모습에 은근한 조바심과 섭섭함을 느끼곤 하니까요. 자존심이라는 녀석은 나이를 먹어도 통 늙지를 않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날카로운 말로 상대를 주저앉혔을 때, 그 거실에 남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겼다는 승리감은 아주 찰나일 뿐, 이내 닫혀버린 아내의 등 뒤로 밀려드는 것은 지독한 쓸쓸함과 미안함뿐이었습니다. 내가 이긴 줄 알았는데, 실은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잃었으니 내가 가장 크게 패배한 셈입니다. 부부든, 자식이든, 오랜 친구든, 누군가 한 사람이 눈물 흘려야 끝나는 승부라면 그곳에는 처음부터 승자 따윈 없었던 것입니다.

현실에서의 진짜 삶은 내 안의 뾰족한 고집을 조용히 덜어내는 과정이더군요. 인생의 후반전이라는 것은 더 많이 채우고 이겨 먹는 삶이 아니라, 내 안의 욕심과 자존심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상대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주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 당신 말이 맞네." 이 짧은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내가 부족해서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존심보다 당신의 마음이, 그리고 우리가 함께 가꾸어온 이 삶이 훨씬 더 소중하기에 기꺼이 내 품을 넓히는 일입니다.

이제는 내 주변을 수많은 사람들로 채우는 화려한 관계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 함께 있을 때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깊고 편안한 관계가 더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서로의 약해진 몸과 마음을 가만히 보듬어줄 수 있는 것, 이기고 지는 날카로운 세상의 잣대를 모두 내려놓고 서로에게 가장 안전한 쉼터가 되어주는 것. 현실의 거친 바람 속에서 우리가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할 진짜 관계는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조금 가벼워지면 상대는 그만큼 숨을 쉬고, 우리가 서로를 향해 둥글어질 때 비로소 그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정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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