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보여지는 나”와 “느끼는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픈 것도 기쁜 것도 드러내지 마라”라는 말은 그 긴장 속에서 나온 오래된 생존의 문장처럼 들린다.
이 말의 표면은 단호하다. 슬픔도 기쁨도 밖으로 내보이지 말라는 것. 언뜻 보면 감정을 억누르라는 냉정한 충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속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한 억압이라기보다 “조심하라”는 경고에 가깝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선의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쁨은 때로 시기를 부르고, 아픔은 때로 약점이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하나의 방어 전략으로 삼는다.
마음의 풍경화, 여백의 미학
우리는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쁨은 온 동네에 소리 높여 자랑해야 하고, 슬픔과 아픔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라도 세상에 전시해야 위로받는 세상입니다. 감정을 숨기면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감정을 아끼면 차가운 사람이라 오해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득, 삶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온 이의 담담한 한마디가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아픈 것도, 기쁜 것도 드러내지 마라."
이 말은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고 참으라는 인내의 강요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에 거대하고 단단한 중심축을 세우라는, 삶을 향한 묵직한 조언에 가깝습니다.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나이가 들고 삶의 궤적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마주하는 아픔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몸의 삐걱거림일 수도 있고, 마음의 쓸쓸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세상에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 이유는, 나의 아픔이 타인에게는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나의 아픔을 가장 잘 만져줄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픔을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쓸어내릴 때, 상처는 덧나지 않고 단단한 굳은살이 되어 우리를 지켜줍니다.
기쁨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기쁜 일을 감추는 것은 얼핏 야박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숙은 나의 기쁨이 누군가에게는 소리 없는 박탈감이나 시기, 혹은 소외감이 될 수 있음을 헤아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가 탄탄한 대로를 걸을 때, 누군가는 거친 자갈길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을지 모릅니다.
나의 기쁨을 담담하게 다스리는 것은 타인을 향한 가장 깊은 배려이자, 스스로의 복(福)을 가볍게 날려 보내지 않고 내면의 깊은 우물에 채워 넣는 지혜입니다.
비워낸 자리에 머무는 평온
감정의 파고를 밖으로 터뜨리지 않고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히면, 비로소 마음에는 넓은 '여백'이 생깁니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물건을 비워내 집안에 온전한 온기를 남기듯, 감정의 과잉을 비워내야만 영혼에 진정한 평정심이 찾아옵니다.
아픈 것도 기쁜 것도 드러내지 않는 그 묵묵한 태도는, 마치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거대한 바위와 닮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저 담담하게 세월을 품어 안는 달관의 경지입니다.
오늘도 내 마음의 호수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 잔물결이 일어난다면, 그저 가만히 바라보며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더 깊어지고, 비워냄으로써 더 충만해지는 그런 삶의 풍경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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