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하기 가장 좋은 대상(Easy Target)
나쁜 사람이 잘 꼬이는 사람의 특징
- 사람을 잘 믿는다 → 상대의 말과 의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경고 신호를 놓칠 수 있습니다.
- 거절을 못한다 → 상대는 "이 사람은 밀어붙이면 들어주겠구나"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참는 게 습관이다 →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즉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기 쉽습니다.
-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 → 배려는 장점이지만, 자신의 필요와 권리를 뒤로 미루는 경우 이용당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 선 긋는 법을 모른다 → 개인적인 영역, 시간, 감정, 돈 등에 대한 경계가 불분명하면 상대가 계속 침범하게 됩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이런 특징들이 모두 나쁜 것이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뢰, 인내, 배려는 인간관계에서 소중한 장점입니다. 문제는 그 장점들이 경계(boundary) 없이 발휘될 때입니다.
심리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악의를 가진 사람이나 타인을 착취하려는 성향(나르시시스트, 가스라이터 등)을 가진 이들은 '선이 없는 사람(Boundaryless)'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일종의 안테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타인의 선의를 존중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믿을 줄 아는 만큼 의심할 줄도 알아야 하고, 배려하는 만큼 자신도 챙길 줄 알아야 하며, 이해하는 만큼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결국 나쁜 사람이 잘 꼬이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계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다.
비워진 정원에 단단한 울타리를 치다
사람을 잘 믿고, 거절하지 못하며, 참는 게 습관이고,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느라 선을 그을 줄 모르는 사람.
돌아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성품이다. 각박한 세상에 이런 이들이 있어 온기가 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냉혹하다. 악의를 가졌거나 타인을 착취하려는 이들에게 이 눈부신 선함은 그저 '다루기 쉬운 먹잇감'의 체크리스트일 뿐이다. 그들은 이 부드러운 성정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사냥감이 덫에 걸리기를 기다리듯 서서히 다가온다.
처음에는 그저 사람을 잘 믿는 마음을 파고든다. 상대가 마음의 빗장을 너무 빨리 열어준 덕에, 악인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상대의 취약점과 깊은 속내를 손에 쥔다. 일단 안방을 내어주고 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무리한 요구를 던져도 거절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미안해하기는커녕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선을 넘는 무례함 앞에서도 "내가 한 번만 더 참고 넘어가자"며 속으로 삼키는 습관은, 상대에게 '이만큼 더 밟고 들어와도 안전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저 사람에게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며 타인의 입장부터 헤아려주는 과한 배려는, 결국 가해자의 변명거리를 피해자가 대신 만들어주는 비극을 낳는다. 내 삶의 영토를 지키는 울타리(선)가 없으니, 남들이 제집 안마당처럼 드나들며 평화를 헤집어놓아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는 엄연한 진실이 있다. 젊은 날에는 마냥 품을 넓히고 모든 이를 수용하는 것만이 미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을 깊이 채우고 다시 비워내는 과정을 거치며, 진짜 지혜는 무조건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비워내고 단호하게 지키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된다.
남을 먼저 생각하느라 정작 상처받은 내 마음을 방치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저지르는 가장 큰 불충(不忠)이다. 이제는 타인을 향한 과도한 개방성을 거두고, 조금은 느리게 믿어도 괜찮다. 내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관계라면 과감하게 가지를 쳐내고, 내 호의를 헐값에 넘겨주지 않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여기까지만"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은 야박하거나 정이 없는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소중한 평온을 지키고, 내가 정말로 책임져야 할 내 영혼의 영토를 보살피기 위한 최소한의 보초를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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