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암 전문가 김의신 박사, “젊어도 스트레스, 식습관 관리 무엇보다 필요”
평소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주말마다 운동을 즐기던 직장인 이모 씨(34·부산 해운대구)는 최근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3기’가 발견된 것이다. 이 씨는 “가족 중 암 환자도 없고 나쁜 습관도 없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이 씨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국내외 보건 통계에서 한국의 20~40대 젊은 층의 대장암, 유방암 환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글로벌 의학 학술지 조사에서 한국의 20~49세 대장암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44.5명으로 조사 대상 42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암 유전자도 없는 젊은이가 암 진단을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건강하던 젊은이들을 암 환자의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걸까?
세계적인 핵의학 권위자이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종신교수를 지낸 김의신 박사가 12일 부산 기장군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연구센터를 찾아 의료진과 연구진을 대상으로 특강을 열고 분자생물학적 원인과 해법을 짚었다. 그는 젊은층 암 발생의 핵심 원인으로 ‘후성유전체(Epigenome)의 오작동’과 세포 내 ‘활성산소(ROS)’가 일으키는 생체 항상성 붕괴를 지목했다.
유전자는 ‘설계도’, 후성유전체는 ‘환경 스위치’…암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김 박사는 “많은 이들이 암을 타고난 유전자(DNA) 탓으로 돌리지만, 질병의 본질은 우리 몸의 신체적,·정신적, 사회적, 영적 안녕(Well-being)이 깨진 상태”라며 운을 뗐다. 특히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정서적 건강, 사회적 활동이 중요하다"고 했다.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몸이 정상 기능을 유지하려면 [염색체 → DNA → 유전자 → RNA → 단백질 → 신호전달 경로]라는 정밀한 유전 정보 전달 체계가 올바르게 작동해야 한다. 이 체계의 최상위에서 조율 역할을 맡은 것이 ‘후성유전체(Epigenome)’다.
DNA가 몸을 만드는 설계도라면, 후성유전체는 그 설계도에서 어떤 유전자를 켤지 끌지 결정하는 스위치다. 아무리 건강한 유전자를 타고났더라도 나쁜 식습관, 극심한 스트레스, 만성 피로, 미세먼지 같은 악성 환경에 계속 노출되면 이 스위치가 고장 난다.
방화범이 된 ‘활성산소(ROS)’, 세포의 균형을 깨뜨리다
그렇다면 고장 난 환경 스위치는 세포 안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걸까? 김 박사는 ‘활성산소(ROS, Reactive Oxygen Species)’를 그 실체로 꼽았다.
세포는 에너지를 만들거나 외부 자극을 받을 때 활성산소를 내뿜는다. 적당량은 세포 성장에 필요한 신호로 작용하지만, 과도한 산화 스트레스(Oxidative Stress) 상황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방화범’으로 돌변한다.
우리 몸에는 이 방화범을 억제하는 ‘항산화 방어 기전(Antioxidant Defenses)’과 내부 균형을 지키는 ‘생체 항상성(Body Homeostasis)’이라는 두 겹의 방어망이 있다. 이 방어망이 방화범을 억제하고 있는 것.
하지만 젊다고 이 방어망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방심해선 안 된다. 특히 스트레스가 폭발적으로 쌓이면 활성산소가 폭죽처럼 쏟아진다. 몸에 가득 퍼진 활성산소는 세포 내 정상 단백질과 지방(지질)을 산화시켜 세포막을 손상시키고, 정상적인 대사 과정, 그리고 신호전달 경로를 뒤흔든다.
그렇게 생체 항상성이 무너지면서 통제를 벗어난 세포가 죽지 않고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로 변한다. 유전자는 멀쩡해도 후성유전체와 활성산소 관리에 실패하면 젊은 세포가 암세포로 변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유독 위장병이 많다"며 "스트레스 → 위산 생성 → 위~췌장 역류 → 췌장암 발병으로 연결되는 게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 했다.
무너진 ‘생체 항상성’ 복원…세포의 산화 스트레스를 꺼라
결국 젊은 암을 막기 위한 해법은 의외로 명확하다. 세포 안에서 독성으로 작용하는 활성산소를 줄이고, 무너진 생체 항상성을 되살리는 것.
김 박사는 강연 내내 “산화 스트레스를 낮추는 생활 습관, 그리고 평소의 면역력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암은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질병이라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짚고, "역설적이지만 죽음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스트레스 안 받는 자세가 좋다"고도 했다. 타고난 설계도(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환경 스위치(후성유전체)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일정 부분 조절 가능하기 때문.
결국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세포까지 안전한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트레스와 나쁜 생활 습관이 세포 속 활성산소를 자극해 암 스위치를 누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다. 몸을 자꾸 학대하면, 우리 몸속 항상성 시스템이 어느 순간 반란군으로 탈바꿈할지 모른다.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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