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몸은 상처가 나고 탈이 나도 스스로를 악착같이 고쳐놓곤 했다. 뒤돌아보면 그때는 몸의 회복 탄력성을 마치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인생의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면, 어느 순간 몸은 이전과 다른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의학에서 말하는 '생리적 철수'의 단계. 이제 몸은 스스로 알아서 치유해 주지 않는다. 병원 처방전이나 약봉지보다, 매일 아침 눈을 떠 어떤 태도로 하루를 마주하느냐가 남은 삶의 질과 시간을 결정짓는 진짜 처방전이 되는 시절이 온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정직하게 축나는 것은 다름 아닌 근육이다. 팔다리가 눈에 띄게 가늘어지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마음의 틈새로 "오늘은 그냥 나가지 말까", "귀찮은데 집에서 쉬지"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하지만 이 귀찮음에 길들여지는 순간, 몸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근육이 빠져나간 자리는 단순히 힘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면역이 떨어지고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회복의 여지마저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거창한 목표 대신, 매일 눈앞의 작은 일상을 묵묵히 쌓아 올리는 것에 삶의 중심을 둔다. 대단한 운동을 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그저 운동화 끈을 매고 밖으로 나선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을 느끼며 매일 오천 보의 걸음을 묵묵히 채우는 것. 그것은 내 몸을 향해 "나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라고 보내는 가장 정직한 생존 신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초록빛 잔디를 밟으며 정답게 골프채를 휘두르는 시간 역시 몸의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까지 깨우는 소중한 의식이다.
몸의 움직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정신의 명징함을 지키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 역시 억지로 붙들고 있던 복잡한 인연들을 담백하게 비워내게 된다. 굳이 마음을 쓰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두고, 사흘에 한 번이라도 마음이 편안한 이들과 마주 앉아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많은 사람 속에 섞여 시끄러운 것보다, 단 몇 명의 소중한 이들과 깊은 눈빛을 나누는 것이 정신을 더 맑게 깨워준다.
결국 마지막까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는 존엄성이다.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소중한 동반자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일, 그리고 내가 살아온 기나긴 삶의 여정과 지혜를 단정한 글로 기록하며 지나온 날들에 감사를 표하는 일. 이 소박하지만 위대한 역할들이 매일 아침 나를 일으켜 세우는 진짜 '할 일'이 된다.
치료가 삶을 연장해 줄 수는 있어도, 삶을 품격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매일의 태도뿐이다. 귀찮은 마음은 가볍게 비워내고, 매일 걷고, 소중한 이를 돌보고, 내 마음을 정리하는 작은 습관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일. 이것이야말로 세월의 철수 명령에 당당히 맞서, 매 순간을 온전한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아름다운 자기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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