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풍요를 목표로 달려왔다. 더 많은 소득, 더 넓은 공간, 더 빠른 기술, 더 편리한 삶. 부족함을 극복하는 것은 오랫동안 인류의 과제였고, 풍요는 그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풍요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또 다른 결핍을 이야기한다. 만족이 부족하고, 여유가 부족하며, 삶의 의미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마트의 매대마다 물건이 넘쳐나고, 손가락 하나로 세상 모든 정보와 물품을 몇 시간 만에 현관 앞까지 대령할 수 있는 시대다. 바야흐로 단군 이래 가장 풍족한 세상이라 부를 만하다. 굶주림과 결핍이 최고의 적이었던 과거를 지나, 이제 우리는 무엇이든 '차고 넘치는' 과잉의 궤도 위에 올라타 있다.
그러나 이 달콤한 풍족함은 생각보다 영악한 얼굴을 하고 있다. 부족할 때는 보이지 않던 거만한 마음이 넉넉함의 틈새를 타고 소리 없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손쉽게 채워질 때, 인간은 묘한 착각에 빠진다. 내 손에 쥔 넉넉함이 오롯이 내 능력의 결과물인 것만 같고, 이 풍요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오만함이다. 결핍이 주던 팽팽한 긴장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내 나태함이 들어차고, 주변을 살피던 시선은 오직 자기 자신만의 안락함으로 좁아진다. 풍족함이 가져오는 가장 무서운 독소는, 다름 아닌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자만심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현대인이 이 '풍요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끊임없이 소유를 늘려가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의 허기는 깊어지고 정신은 피로해진다. 넘쳐나는 관계 속에서 진짜 내 편은 보이지 않고,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내면의 중심은 갈수록 흔들린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쥐려는 악착같음이 아니라, 손에 쥔 것을 덜어낼 줄 아는 비움의 지혜다.
비움은 단순히 물리적인 물건을 버리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과하게 들어찬 자만과 오만을 걷어내고, 삶을 가장 담백하고 단순한 상태로 되돌리는 정신적 훈련이다.
물건을 줄여 집안의 여백을 만들듯, 마음에 여백을 만들 때 비로소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가진 풍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자만은 부끄러움으로, 오만은 겸손으로 모습을 바꾼다. 가득 찬 잔에는 새로운 차를 따를 수 없듯이, 스스로를 낮추고 비워내야만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세상의 진면목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가장 가득 차 있을 때가 가장 가끼이 위기가 와 있을 때다."
진정한 삶의 내공은 채우는 속도가 아니라 덜어내는 과감함에서 증명된다. 끝없는 과잉의 유혹 속에서 자만하지 않고 날마다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 그리하여 삶을 낭비 없이 단순하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풍요롭고도 빈곤한 시대를 가장 품위 있게 살아가는 강력한 저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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