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요한 새벽이나 늦은 오후, 불쑥 찾아오는 마음의 동요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나이가 들고 삶의 수많은 고개를 넘어 이제는 웬만한 바람에도 무던해졌다고 믿었건만, 문득 찾아오는 아픔과 밀려드는 외로움은 여전히 낯설고 매섭기만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흔들림이야말로 우리가 아직 메마르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살아 있지 않은 것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생명이 떠나간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생기가 없는 돌은 아무리 시린 겨울이 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직 살아 있는 존재만이 바람에 가지를 흔들고, 추위에 살을 에며, 고독 속에서 서글픔을 느낍니다.
흔들림: 유연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
마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흔히 '내가 아직도 부족한가'라며 스스로를 책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흔들림은 유약함이 아니라 유연함입니다. 겉보기엔 단단해서 절대로 부러지지 않을 것 같던 거목도 거센 폭풍우 앞에서는 꺾이고 마는 반면, 유연하게 허리를 숙일 줄 아는 갈대는 거센 바람이 지나간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푸름을 유지합니다.
지금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면, 그것은 삶의 변화와 자극에 내 영혼이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적응해 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아픔: 삶을 깊게 만드는 스승
통증은 괴롭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를 보호하는 가장 정직한 감각입니다. 아픔이 있기에 우리는 상처 입은 곳을 들여다보고, 쉬어가야 할 때를 알며, 타인의 고통에도 비로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의 깊은 안목(眼目)과 지혜는 평탄하고 따스한 날이 아니라, 시리고 아픈 계절을 통과할 때 비로소 단단해집니다. 고통을 통과하며 벼려진 마음은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로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외로움: 나와 마주하는 고독의 시간
사람은 누구나 홀로 태어나 홀로 떠나는 존재이기에, 외로움은 인생의 본질이자 숙명과도 같습니다. 주위에 아무리 소중한 이들이 있고 다정한 가족이 곁을 지켜준다 해도, 영혼의 깊은 중심에 있는 방은 결국 나 혼자 지켜내야 하는 공간입니다.
그 외로움을 억지로 지우려 하거나 무언가로 채우려 버둥거릴 필요는 없습니다. 외로움이 깊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번잡한 세상의 소음을 끄고 내면의 본질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흔들리고 아프고 외롭다면, 지금 내가 살아있구나 느껴라."
이 한 줄의 고백은 삶의 겨울을 통과하는 이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건네는 가장 초연하고도 위대한 선언입니다.
그 시린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됩니다.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고, 서글픔에 아파하며, 고독 속에 머무는 나를 가만히 토닥여 봅니다. '아, 내가 지금 참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구나.' 그 깊은 자각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평온하게 다음 걸음을 내딛을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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