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채워지는 자리, 영적인 품에 안기다
살아온 날들의 무게만큼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놓아주는 나이가 되면, 세상의 소음보다는 내면의 고요가, 화려한 관계보다는 깊고 편안한 영적 교감이 더 소중해집니다. 내 손으로 일구고 책임져야 했던 삶의 무대에서 한 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마음의 눈에 들어오는 가장 따뜻한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향해 언제나 두 팔을 벌리고 계신 영적인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품입니다.
성모님을 영적인 어머니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은, 평생을 치열하게 달려온 영혼이 비로소 가장 안전하고 평온한 태중(胎中)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품에 안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업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처럼 단순해지는 마음, 그리고 내 안을 비워내는 영적 훈련입니다.
성모님의 삶은 언제나 '비움'과 '기다림'이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단 한 마디의 고백(Fiat)으로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내어 맡기셨습니다. 내 생각과 고집, 미래에 대한 염려로 꽉 차 있는 마음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고요히 숨을 고르고 내면의 집착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비워진 그 자리에 성모님이 건네시는 깊은 평화가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또한 성모님은 ‘침묵 속에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 복음서는 그분이 기쁜 일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순간도 “모두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다”고 전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채우고, 주장하고, 소리 높이라고 유혹하지만, 성모님의 침묵은 삶의 표면 아래에 숨겨진 진정한 가치와 하느님의 섭리를 읽어내는 ‘영적인 안목’을 가르쳐 줍니다. 하루의 소란함을 뒤로하고 가만히 묵주를 손에 쥐는 시간, 우리는 어머니의 침묵을 닮아가며 삶을 더 깊이 관조하게 됩니다.
가장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은 아들의 십자가 발치 아래 묵묵히 서 계시던 순간에 빛납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신뢰로 자리를 지키셨던 그 인내는 삶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잔잔한 용기를 줍니다. 육신의 쇠퇴나 삶의 외로움이라는 나만의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 십자가 아래 서 계시던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아무 말 없이 그 곁을 함께 지켜주시는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 주십니다.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는 자세는 거창한 다짐에 있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떠 가만히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염려를 그분 손에 지워드리는 것, 그리고 그분이 가신 겸손과 순종의 길을 묵묵히 따라 걷는 것입니다.
가장 단순하고 boring(지루)해 보이는 기도의 반복 속에서 영혼은 가장 단단하게 정화됩니다. 세상의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다정한 눈빛 안에서 머무는 삶, 그것이 바로 이 지상에서 미리 누리는 천상의 평화이자, 참된 영적 성숙의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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