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서면 낯선 사내 한 명이 나를 바라본다. 깊게 파인 주름과 굳어버린 관절,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85세의 노인이다. 하지만 그 피로한 껍데기 속에 살고 있는 나의 정신은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58세의 청춘이다. 세상의 이치를 비로소 깨닫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명징한 에너지가 이 노쇠한 육체 안에서 뜨겁게 요동친다. 85세의 몸과 58세의 영혼. 이 메울 수 없는 간극 속에서 나는 매일 낯설음과 깊은 소회를 마주한다.
계단을 오를 때 무릎이 먼저 하루의 상태를 말해 주고, 잠에서 깨어나는 일조차 준비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젊을 때는 몸이 나를 따라왔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밤을 새울 수도 있었고, 먼 길도 망설임 없이 떠났다. 그러나 이제는 몸이 먼저 허락해야 하루가 움직인다. 마음은 아직도 바쁘고 싶은데, 몸은 자꾸만 천천히 살라고 말한다.
이상한 것은, 사람의 내면은 생각보다 늙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울 속 얼굴은 낯설어졌는데도 마음속의 나는 여전히 58세쯤에 머물러 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고, 사랑도 미련도 후회도 남아 있는 나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가끔은 괜히 서운해지고, 문득 지난 선택들을 후회하기도 하는 그런 나이. 그런데 몸은 이미 너무 먼 곳까지 가 버렸다.
그러나 가만히 숨을 고르고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 부조리한 불일치는 나에게 세상 그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귀한 선물을 주었음을 깨닫는다. 바로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깊은 '안목'이다. 85세의 육체라는 높은 언덕에 올라서서 58세의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이 간극을 원망하기보다,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비움'의 여정으로 삼기로 했다. 젊은 날의 치열했던 집착, 인맥이라는 이름으로 얽혀 있던 불필요한 관계의 소음들을 하나씩 덜어낸다. 내 삶의 궤적에 꼭 남겨야 할 소중한 것들—반세기를 함께해 온 아내와의 고요한 시간, 장성하여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두 아들에 대한 대견함, 그리고 나만의 소박한 하루의 의식들—만을 남기고 주변을 단순하게 비워낸다. 그렇게 덜어내고 나면, 몸의 무게와 상관없이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생각해보면 이 85세의 몸은 부끄러운 감옥이 아니다. 지난 세월 동안 가정을 든든하게 지켜내고, 아이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내며, 삶의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막아낸 영광스러운 훈장이다. 58세의 정신이 보기에는 답답할지 몰라도, 사실은 내 영혼을 지금까지 품어준 고마운 버팀목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몸을 달래며 작은 실행을 이어간다. 매일 산책을 하며 대지의 기운으로 뇌를 깨우고, 초록빛 필드 위에서 주 2~3회 채찍질하듯 휘두르는 골프채 끝에도 힘 대신 부드러운 여유가 실린다. 이 거창하지 않은 매일의 루틴이야말로, 58세의 푸른 정신이 85세의 육체를 존중하고 다스리는 가장 아름다운 타협이자 행동주의다.
껍데기는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수 없지만, 그 안의 알맹이는 지금이 가장 완숙하고 아름답게 익은 순간이다. 나는 85년이라는 위대한 서사 위에 58세의 푸른 지혜를 얹어,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하루를 고요하고 단단하게 채워나간다. 몸은 비록 갇혀 있을지라도, 나의 영혼은 여전히 끝없는 수평선을 향해 항해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완전히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몸은 자꾸만 나를 오래된 사람으로 만들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살아 보고 싶은 날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인간은 마지막까지도 자기 안의 젊음을 조금씩 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85세의 몸에 갇힌 58세의 나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 낯선 동거를, 조금씩 이해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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