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화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세 가지로 요약해 줍니다.
자랑(허영심): 자신을 높이는 말은 결국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허영으로 비치기 쉽습니다.
자책(소심함): 겸손을 가장해 자신을 과도하게 낮추거나 탓하는 말은, 당당하지 못한 소심함이나 은근히 위로를 바라는 심리로 보일 수 있습니다.
경청의 가치: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를 줄이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말하는 이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듣는 이를 보호하고 진정한 소통을 이루는 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말하기 전에 그것이 침묵보다 가치 있는 것인지 생각하라"**는 옛 격언처럼, 가끔은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는 침묵이 가장 깊은 지혜가 되곤 합니다.
오늘 하루, 내 이야기보다 타인의 이야기에 한 걸음 더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말의 지우개, 침묵의 자리
나이가 들어갈수록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방 안의 낡은 물건을 정리하는 것만큼이나, 평생 몸에 밴 말의 습관을 덜어내는 일은 고된 수행과도 같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일찍이 “결코 자신에 대해 말하지 마라. 자기를 칭찬하는 것은 허영심이고, 자기를 책망하는 것은 소심함이다”라는 엄격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이 서슬 퍼런 경고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더욱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허영과 소심, 그 한 끗 차이의 마음
돌이켜보면 누군가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의 플롯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은근히 내 가치나 성과를 알아달라며 넌지시 던지는 ‘자기 칭찬’은, 아무리 부드러운 포장지를 씌워도 결국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허영심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 말을 얹다 보면, 어느새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독백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반대로 자신을 낮추는 ‘자기 책망’은 어떨까요. 겸손이라는 미덕으로 포장하기 쉽지만, 이 역시 현실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자기중심성일 때가 많습니다. 과도한 자책은 듣는 이에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라는 위로와 확인을 강요하는 심리적 부담을 주며, 스스로를 당당하게 책임지지 못하는 소심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결국 나를 높이는 쪽이든 낮추는 쪽이든, 대화의 중심에 오롯이 '나'만을 올려두려는 태도는 듣는 이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듣는 자의 괴로움과 말의 무게
"말하는 자에게서 어리석음이 드러나면 듣는 자에게는 괴롭다."
이 구절은 대화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우리는 종종 침묵이 어색해서, 혹은 내가 이 자리를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무의미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말, 나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 난 언어 속에는 필연적으로 어리석음이 묻어납니다.
현실에서 가장 품격 있는 대화는 내 지식이나 경험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멈추고 상대방이 마음 놓고 머무를 수 있는 ‘빈 공간’을 넓혀줄 때, 비로소 대화는 맑고 투명해집니다.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꾹 누르고 가만히 경청하는 태도야말로,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서적이고 안전한 환대인 셈입니다.
비워진 침묵 위에 돋아나는 지혜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만남 속에서, 파스칼의 이 문장을 하나의 거울로 삼아봅니다. 말을 꺼내기 전, 이 말이 혹시 나의 허영을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혹은 소심한 위로를 바라는 자책은 아닌지 마음의 필터를 거쳐보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그칠 때, 비로소 타인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세상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몫의 말을 줄이고 담백한 침묵으로 자리를 채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숱한 소음을 걷어내고, 남은 날들을 가장 지혜롭고 정갈하게 가꾸어가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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