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월의 마지막 날과 예수 성심 성월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아, 노화와 겸손, 그리고 성모님의 모범과 예수 성심의 사랑을 연결한 묵상 에세이로 써 보았습니다.
노화가 주는 겸손의 교훈
성모성월을 보내며, 예수 성심 성월을 맞이하며
오월의 푸르름이 짙어질 대로 짙어져 갈 무렵이면, 성당 마당의 성모상 앞은 언제나 촛불의 온기와 장미 향기로 가득했다. 한 달 동안 성모님의 자애로운 품 안에서 위로를 얻고 그분의 철저한 순명을 묵상하던 시간. 이제 그 오월이 저물고, 유월의 길목에서 ‘예수 성심 성월’의 문이 조용히 열린다. 어머니의 따뜻한 치맛자락을 잡고 있던 아이가, 이제는 아들의 깊고 거룩한 심장 안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는 듯한 엄숙함이 마음에 가득 찬다.
돌이켜보면 삶의 계절도 이 교회의 전례 주기와 참 많이 닮아 있다. 봄날의 화려한 꽃과 장년의 무성한 초록을 지나, 이제는 조금씩 비워내고 덜어내야 하는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의 고개를 넘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겸손’이라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스승을 대면하게 된다.
젊은 날의 삶은 온통 무언가를 채우고, 증명하고, 이뤄내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 같았다. 내 힘과 의지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오만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소리 없이 흐르며 내 몸의 한계를 일깨우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이치를 부드럽게 가르쳐주었다. 성모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며 당신의 삶을 통째로 내어맡기셨던 그 고요한 비움(Fiat)이, 나이가 들어 마주하는 ‘내려놓음’의 여정과 어찌 이리도 닮아 있는지. 내 손에 쥔 것들을 하나씩 놓아줄 때, 역설적이게도 영혼의 공간은 더 넓어지고 평온해진다.
그 비워진 마음에 차오르는 것은 사물과 사람을 다르게 바라보는 깊은 ‘안목(眼目)’이다. 이제는 육신의 눈이 흐려지는 대신, 마음의 눈이 더 투명해짐을 느낀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수식어나 날카로운 시시비비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사람들의 외로움과 진심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타인을 향해 세웠던 날카로운 잣대를 부러뜨리고, 그저 묵묵히 품어주고 허물을 덮어주는 넉넉함. 그것은 내가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을 뼈저리게 고백하는 겸손에서만 나오는 지혜다.
이제 맞이하는 예수 성심 성월은 우리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배워라” 하신 주님의 초대를 건넨다. 창에 찔리고 상처받으면서도 끝까지 인간을 향해 열려 있던 그 붉은 심장. 그 사랑을 닮아간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곁에 머무는 소중한 인연들에게 더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판단하는 말 대신 긍정하고 격려하는 언어를 건네는 것. 그리고 매일 아침 눈을 떠 가만히 걸을 수 있는 숨결이 있음에 깊이 감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영혼에 예수님의 성심을 새기는 일일 것이다.
넓고 화려한 세상의 인맥보다, 마음이 통하는 몇몇의 따뜻한 이들과 나누는 고요한 시간이 삶의 진정한 오아시스임을 안다. 말을 줄이고 경청을 늘리며, 내 안의 소란스러움을 가라앉히는 유월. 성모님의 순명으로 밭을 갈고 예수 성심의 사랑으로 씨앗을 뿌린 내 남은 생의 여정이,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그렇게 더 깊은 겸손으로 익어가기를 소망해 본다. 지는 해의 노을이 아침 해 못지않게 아름다운 이유는, 온 세상을 품어 안는 그 고요하고 부드러운 빛깔 때문일 것이기에. (옮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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