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말의 무게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젊은 날에는 내 안의 생각과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는 것이 솔직함이자 용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수많은 계절을 지나오며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의 진실이 있다.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잘 참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참는 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하고 값지다는 사실이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은 대개 내 안의 욕망이나 억울함을 다스리는 일이다. 조금 답답하고 속이 쓰릴지언정 내 선에서 소화해 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참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그것은 타인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사려 깊은 배려이자,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통제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후회는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탄식에서 비롯된다. 찰나의 미숙한 감정이나 섣부른 판단으로 뱉어버린 한마디는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화살이 되어 상대의 가슴에 깊숙이 박히고, 결국에는 부메랑이 되어 내 품격을 갉아먹는다. 말은 쏟아놓기 전에는 내가 지배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오랜 철학에서는 삶의 본질을 '비움(Emptying)'에서 찾곤 한다. 그릇도 안이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고, 방도 여백이 있어야 온전히 머물 수 있듯이 말에도 비움이 필요하다. 생각을 곧바로 언어로 바꾸지 않고, 내 안의 거름망으로 한 번 더 걸러내는 과정.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말 중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과감히 덜어내는 이 묵묵한 인내는, 삶의 군더더기를 빼고 본질에 집중하는 거장의 손길을 닮았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저마다 더 많은 말을 얹으려 안달한다. 하지만 진정한 내공과 통찰은 말을 보태는 곳이 아니라, 침묵해야 할 때를 알고 멈추는 곳에서 드러난다. 불필요한 말을 참아낸 그 고요한 빈자리에 비로소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에 대한 겸손함이 채워진다.
오늘도 입술을 떠나려는 말의 무게를 달아본다. 화려하게 꾸민 백 마디 말보다, 하지 말았어야 했을 한마디를 끝내 삼켜낸 내 안의 침묵이 오늘의 나를 더 단단하고 품격 있게 만들어 주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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